(출처-조선일보 2013.10.08 김대식 KAIST 교수· 뇌과학)
눈앞에 보이는 물을 다른 컵에 옮겨 담기만 했는데
- 발달심리학자 장 피아제(Jean Piaget)의 ‘보존개념’ 실험
스위스 발달심리학자 피아제(Jean Piaget·1896~1980)는 인간은 ‘보존개념’을 타고나는 게 아니라 오랜 발달 과정을 통해
서서히 인식해나간다고 주장했다. 보존개념이 아직 발달하지 못한 나이엔 ‘더 높다’와 같은 하나의 특정 조건을 ‘높이’
그리고 ‘폭’ 같은 다양한 조건의 조합인 ‘더 많다’와 혼동한다는 것이다.
보통 7세에서 12세 정도 돼야 아이들은 긴 컵에 물이 높이 찬 만큼 더 좁은 폭을 차지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지난 10월 1일부터 미국 정부 ‘셧다운’(폐쇄) 제도가 시작돼 미 연방정부의 기능이 대부분 마비됐다.
연방 공무원 약 70만명이 일시 해고되었고 100만명 정도 공무원에겐 무급 근무 조치가 내려졌다.
모든 국립공원은 문을 닫았으며, 국세청의 세금 신고 절차가 중단되었다.
국제우주정거장(ISS) 같은 핵심 시설 유지를 위한 비상직원들 외의 모든 항공우주국(NASA) 직원들은 집으로 돌아갔으며,
국립보건연구원(NIH) 소속 연구원 1만8646명 중 73%가 무급 근무에 들어갔다.
9월 30일 정부 폐쇄 하루 전 수많은 NIH 연구원은 실험 중이던 연구 샘플들을 어떻게 해서라도 보존해 보려고 온종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고 한다.
어린 암 환자들을 포함해 NIH 연구병원에서 치료 중이던 환자 200명은 치료를 중단해야만 했다.
왜 이렇게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것일까? ‘국민의 행복’이라는 절대가치를 미국 정치인들은 보존하지 못한 것이다.
집권 민주당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료보험 개혁, 그리고 야당 공화당이 중요시하는 재정적 안전. 모두 다 중요한 개념이다.
하지만 ‘나’와 ‘내 당’에 더 중요한 특정 조건 아래에서만 더 높게 찬 물을 ‘더 많다’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결국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헌법으로 정의된 자유, 민주, 행복 권리 같은 절대 보존개념 유지는 미국 정치인들에게만 중요한 것이 결코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