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제국 동가도'에서 고종이 등장하는 장면. /이화여대박물관 제공
곤룡포에 익선관을 갖춘 고종이 가마 타고 행차에 나섰다. 말 위에서 갖가지 기예를 펼치는 병사들, 문무백관의 행렬, 태평소를 부는 군병의 볼록한 뺨까지 생생하다. 세로 19.5㎝, 가로 1746㎝의 이 두루마리 그림은 '대한제국 동가도(動駕圖)'. 구한말 장중했던 어가 행렬을 묘사한 궁중 기록화다.
이화여대박물관(관장 장남원)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근대회화-대한제국에서 1950년대까지'에서 이 그림을 볼 수 있다. 특이한 것은 왕을 묘사하지 않는 기존의 의궤(儀軌)와 달리 왕의 얼굴을 그렸다는 것.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얼굴을 드러내는 일 자체가 금기였으나 이 그림에선 고종이 4번 등장한다. 목각 도장을 찍고 채색을 가미하는 기존의 인각 채색법이 아니라 서양화법을 활용해 일일이 손으로 그린 것도 흥미롭다.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 채용신(1850~1941)의 작품으로 전해지지만, 필치나 행렬 순서 등이 정확하지 않아 제작 연대와 작가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있다. 박물관은 "그림 속 기록으로 볼 때 삼군부 설치가 공식화한 1868년 3월 23일에서 7월 2일 사이의 행사 장면"이라며 "채용신의 원본을 모사한 후대작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근대적 표상이 도입된 대한제국기부터 1950년대까지 한국 미술의 변화 궤적을 보여주는 전시다. 박물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근대회화 100여점을 5개 주제로 정리했다. 김은호·이상범·장우성 등 한국 근대화단의 성장을 주도했던 화가들의 작품, 김활란 등 이화여대 관련 인사들이 주축이 돼 발족한 '금란묵회' 회원들의 그림도 공개된다. 이종우가 1926년 프랑스 파리에 머물 때 한국인 유학생을 모델로 그린 '독서하는 친구', 도상봉의 1933년작 '도자기와 여인좌상'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내년 4월 11일까지. 무료. (02)3277-3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