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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의사선생님] [김상윤 교수의 뇌 이야기] 치매 걸리자 선 단순해지고 색도 줄어 김상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바람아님 2014. 12. 23. 09:46

(출처-조선일보 2014.12.23 김상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추상 화가 빌럼 더 코닝의 작품세계
손상된 인지기능, 그림에 나타나… 파랑·초록 줄고 빨강·노랑 늘어

빌럼 더 코닝(1904~1997)은 20세기 대표적인 추상표현주의 작가로 불린다. 
거친 화법으로 여성을 악마적 성적 대상으로 형상화한 '여인' 시리즈로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1953년도 작품인 '여인3'〈사진 왼쪽〉은 경매에서 1443억원을 기록해 현재 세계에서 다섯째로 비싼 그림이다.


	사진 왼쪽은 화가 빌럼 더 코닝의 작품‘여인3’. 치매가 오기 전인 1953년에 그렸다. 오른쪽은 치매가 온 이후인 1986년에 그린 작품‘무제(無題)’.

 사진 왼쪽은 화가 빌럼 더 코닝의 

작품‘여인3’. 치매가 오기 전인 

1953년에 그렸다.


오른쪽은 치매가 온 이후인 

1986년에 그린 작품‘무제(無題)’.


그는 물감을 두껍게 짓이겨 채색하는 과격한 터치로 격렬하고 공격적인 작업을 펼쳤다. 
그러다 인생 후기로 접어들면서 느긋하고 고요하고 간결한 화풍을 보여주었다. 
후기 그림은 주로 그의 나이 70대인 1980년대에 제작됐다. 
그 이전 알코올중독으로 진단받았고, 1970년대 후반부터 치매 증상을 보였다. 
치매 중 가장 흔한 알츠하이머병으로 의심된다.

이 때문인지 1980년대 그림은 이전과 너무도 다르다. 치매에서 보이는 특징이 그림에 잘 나타난다. 
1986년 '무제'〈사진 오른쪽〉라는 작품에서 보듯이, 
그림은 몇 개의 단순한 선과 군데군데 한 가지 색으로 칠한 부분만으로 이뤄져 있다. 
전반적으로 빨간색과 노란색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파란색과 초록색 비율은 줄어든다. 
치매 어르신 그림에서는 이처럼 파랑과 초록이 줄고, 빨강과 노랑의 비율이 는다. 
인지 기능 장애가 심한 할머니들은 핑크색을 좋아한다. 
이 점으로도 코닝의 인지 기능이 노년기로 갈수록 손상되어 간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그림은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해지는데, 어찌 보면 초등학교 이전 아이들 그림과 비슷하다고 느낄지 모르겠다.

	김상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화가의 병력(病歷)과 그림 변화를 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붓으로 만들어 놓은 낙서나 끼적거림에 
불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그의 화풍을 감안해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추상표현주의 회화의 본질은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계획하고 완성해나가는 방식이 아니다. 
인간 내면의 정신을 본 대로 느낀 대로 표현한다. 
1980년대 이후 그림들은 인지 기능이 많이 손상된 상태의 마음이 그대로 그림에 나타났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얻게 되는 수많은 고정된 행동과 의식, 생각의 틀을 
모두 떨쳐버린 것은 아닐까.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자유스러운 그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당시 그는 이 그림들을 그리면서 매우 행복했다고 한다.

치매는 노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증상이지만, 치매에 걸렸어도 나름대로 우아함과 
고귀함을 지키며 살아가는 분들이 있다. 이런 분들을 '우아한 치매'라고 부른다. 
치매 환자들도 진정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동안은 아이같이 순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