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08.30 이한우 문화부장)
- 리더의 기본 책무
사람을 알아보고 써서 승부의 결과에 책임져야
- 먼저 文質을 파악하라
文은 글이 아니라 '애씀'… 質은 타고난 기본바탕
- 둘째 기준은 不固여부
애쓰는 법을 배운 사람은 고집불통에 빠지지 않아
리더는 한마디로 사람을 알아보고 써서 승부의 결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옛날에는 지인(知人)에 실패하면 왕위에서 내쫓겼고 오늘날에는 선거에서 패하거나 회사가 망한다.
그러면 사람을 안다는 지인(知人) 혹은 사람을 본다는 관인(觀人)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치인의 사례를 통해 문과 질의 방법론을 활용해보자.
여기서 공자가 말한 배움(學)이 문제가 된다.
이쯤 하고서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자.
'논어'의 첫 구절, 學而時習之(학이시습지) 不亦說乎(불역열호)에서 學(학)은 과연 무엇을 배운다는 뜻일까?
공자가 가르치려 했던 것이 문행충신(文行忠信) 넷이었으니 이 넷을 다 배운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열렬하게 배워야 하는 것은 문(文), 즉 애씀이다. 애쓴다고 해서 무슨 끙끙거린다는 뜻이 아니다.
사전 의미 그대로 '몸과 마음을 다해 혼신의 힘을 쏟아내는 것',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진정성 있게 사람을 대하고 일을 하는 것이다.
공자는 대체로 바탕(質)은 타고나는 것이 대부분이라 가르침이나 배움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공자가 사람들로 하여금 배우기를 촉구했던 것은 다름 아닌 애씀 혹은 애쓰는 법(文)이었다.
이는 애쓰는 법을 배우려는(學文) 사람과 정반대의 사람을 보면 더 명확해진다.
공자는 學則不固(학즉불고), 즉 '배우면 고집불통에 빠지지 않는다'고 했다. 무엇을 배우면? 당연히 '문(文)을 배우면'이다.
반면에 지금 선 자리에서 조금도 자신을 바꾸기 위해 나아가려 하지 않는 자가 고집불통(固)이다.
문질(文質)에 이어 우리는 둘째로 사람을 알아보는 핵심 개념으로 학(學)과 고(固)를 만났다.
문질이 상호 보완적 개념이라면 학고는 정확히 대립적인 개념이다.
일단 이것만으로 자신에 대해 혹은 주변 사람들에 대해 문이 강한지, 질만 좋은지, 서로 잘 조화를 이뤘는지를 살펴보고
이어 저 사람은 기꺼이 문을 배워 나아가려는 사람인지 꼼짝도 않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인지를 살펴보는
훈련을 해보면 좋겠다. 그래야 사람을 살피는 다음 개념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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