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북한의 이설주씨에게

바람아님 2015. 8. 23. 09:23

[J플러스] 입력 2015-08-22

 

 북한의 이설주씨에게.
 
 당신과 나는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의외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2013년에 딸을 얻었다는 겁니다.
 
 물론 당신이 아이를 낳은 건 그 해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살고 있는 곳의 폐쇄성 때문에 한국 정보 당국의 추정이 조금 틀렸을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당신이 저와 같은 '딸바보'인 건 거의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해 북한을 방문한 미국 프로농구 선수 출신 데니스 로드먼에게 당신이 "'예쁜 어린 딸' 얘기만 했다"고 하니 말입니다.
 
 엄마인 당신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최근 며칠 새 밤잠을 설치지는 않았는지요.
 저는 그랬습니다. 회사 일 등으로 몸은 파김치인데, 쉽사리 잠들지 못했습니다. 옆에 잠든 딸 아이 얼굴을 들여다보기도 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서요. '정말 전쟁이 터지면 어떡하지. 우리 딸은 어떡하지.'
 
 제가 요즘 더 예민한 건지도 모릅니다. 둘째까지 임신한 상태거든요. 이번에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완전무장 전시체제'를 선언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엔 어이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이번에도 또 이러나" 싶어서였습니다.
 
 사실 한 생명을 뱃속에 품고 있는 엄마로서 전쟁이 터질까봐 걱정해야하는 슬픈 상황에 처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첫째를 임신했던 2013년에도 거의 똑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당시에도 한반도에는 전운이 감돌았고, TV에선 "북한에서 포탄이 떨어지면 어디로 피하는 게 가장 안전할까" 같은 뉴스가 흘러나오곤 했습니다. 그 때도 뱃속의 아이를 향해 그랬더랬습니다. "좋은 것만 보여주고, 좋은 것만 들려줘야하는데, 엄마가, 미안해." '태교를 위해' 뉴스를 멀리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기자로서 그러기도 어려웠습니다. 남북의 긴장이 고조되는 뉴스를 실시간으로 접하는 데 따른 불안은 고스란히 제가 감당해야할 몫이었습니다. 사실 그건 굳이 기자가 아니라도, 모든 국민이 그랬을 겁니다.  
   
 그런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마인드 컨트롤이 더 잘 될 줄 알았습니다. '그 때도 결국 별 일 없었잖아'라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역시 또 쉽지가 않네요. 저 같은 어려움은 다른 임신부, 아니 모든 아이의 엄마, 아니 전 국민이 또다시 겪고 있을 겁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라도 말입니다. 무엇보다 장성한 아들을 군대에 보낸 어머니들이 제일 힘들 겁니다. 아마도 며칠 전부터 잠들지 못하고 기도하고 계시겠지요.  
 
 제가 당신을 향해 이런 글을 쓰는 건 어쩌면 너무 순진한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남편 김정은 위원장을 설득할 수는 없나요. 당신과 그 사이에 낳은 두 아이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더 이상 한반도에 긴장을 조성하는 일은 그만두면 안되냐고 말입니다. 분단 70년에, 평화 통일로 가는 길을 찾을 수는 없냐고 말입니다.
 
 사실 지난 7월 일본 도쿄 시내에 등장한 수천명의 엄마 시위대에 대한 기사를 보고 엉뚱한 상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남북한의 모든 엄마들이 나선다면, 한반도에도 평화가 올 수 있지 않을까"라고요.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된 건, 당시 아베 신조 총리가 추진하는 안보법안에 반대하기 위해, 일본이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일본 엄마들이 외친 구호 때문이었습니다.
 
 “이 아이들은 다른 사람을 죽이거나, 죽임을 당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 누구의 아이도 죽여서는 안 된다.”
 
 남북한 엄마들의 생각도 같을 겁니다. 당신도 같은 마음일 겁니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요.
 
 사실 한국에는 당신과 당신 남편, 가족들에 대한 '응징'을 주장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연평해전 전사자 가족, 목함지뢰로 다리를 잃은 군인 어머니의 마음이 그럴 수 있습니다. "여자들이 군사와 외교 문제를 뭘 아나"라며 코웃음치거나,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남성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전 그들에게 한 일본 엄마가 했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우리가 군사와 외교 전문가는 아니지만, 매일 집에서 생명의 현장(육아)과 마주하고 있다.”
 무엇보다 전쟁이 터지면 승패를 떠나 희생돼야하는 건 결국 누군가의 아이입니다. 그들은 한때 엄마, 아빠로 불렸던 누군가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이었겠지요.
 
 물론 당신에겐 남편을 설득할 힘이 없을 지도 모릅니다. 올해 들어 당신의 공개활동이 뜸해지기도 했지요. 당신이 내조에 전념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당신과 김 위원장의 사이가 틀어졌다는 추측까지 나오고요.  
 
 그래도 부탁합니다. 평화를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지를 고민해주기를.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보다 평화로운 세상으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애써주기를.
 사실 당신 뿐 아니라 한반도의 모든 엄마들, 더 나아가 모든 아빠들, 한반도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마음으로 애쓴다면 한반도 평화는 달성하기 어려운 꿈만은 아닐 거라고, 전 믿습니다.
 모두가 함께 꿈을 꾸면 그 꿈은 현실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요.
 분명, 그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