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3.07 전원경·'런던 미술관 산책' 저자)
때로 봄은 소리 없이 도시의 주변에서부터 온다.
런던으로 말하자면 어느 날 갑자기 공원에 무리 지어 피어난 수선화 더미에서 봄이 왔음을
실감하곤 했다. 그 순간 고개를 들어 주위를 바라보면 차가운 회색 하늘은 어느새 사라지고
부드러운 푸른빛을 머금은 하늘과 창백한 햇살이 눈이 부시게 하는 것이다.
1871년 런던에서 처음 봄을 맞은 카미유 피사로(작은 사진·1830~1903)도 엇비슷한 느낌을
1871년 런던에서 처음 봄을 맞은 카미유 피사로(작은 사진·1830~1903)도 엇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가 1871년 초엽에 그린 '시드넘 거리'에는 이미 봄이 찾아왔다.
파라솔을 든 숙녀들과 두 마리 말이 끄는 마차가 봄볕 사이를 한가로이 오간다.
이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진 곳은 런던 교외인 어퍼 노우드(Upper Norwood)의 동네 시드넘
(Sydenham)이다. 보불전쟁을 피해 프랑스를 떠나온 피사로는 1870년 11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시드넘 거리'를 그리던 당시 피사로의 마음은 그림 속 풍경처럼
마냥 평온하지만은 않았다. 1870년은 피사로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다. 전쟁으로 집과 친한 동료를 잃었고, 가을에 태어난
셋째 아이는 겨우 2주일 만에 세상을 떴다. 그는 슬픔에 빠진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이해 11월 런던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두꺼운 잿빛 안개에 싸인 이국 도시의 겨울은 그의 마음속만큼이나 적막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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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미유 피사로의 1871년작 ‘시드넘 거리’. /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그러나 봄이 찾아오면서 런던의 모습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었다.
햇살이 대기에 깃들자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참나무 가지마다 연둣빛 이파리들이 피어났다.
피사로는 런던 주변과 도심을 오가며 도시의 봄을 부지런히 캔버스에 담았다.
그가 평생 거래한 화상 뒤랑-뤼엘을 만난 곳도,
터너와 컨스터블의 풍경화를 보며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인상파의 아이디어에 대해 확신하게 된 곳도 런던이었다.
죽은 땅에서 새싹을 키워내는 황무지의 봄처럼, 런던의 봄은 피사로에게 분명 새로운 희망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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