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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아베에 일침… "상대국이 됐다고 할 때까지 사죄해야"

바람아님 2015. 4. 18. 09:23

(출처-조선일보 2015.04.18 도쿄=김수혜 특파원)

"사죄, 부끄러운 것 아냐… 세세한 사실 어떻든 간에 침략 사실 변하지 않아"


	무라카미 하루키 사진

"상대 국가가 '깨끗이 풀린 건 아니지만 그만큼 사죄를 해오니, 알겠습니다. 이제 됐어요'라고 

말할 때까지 계속 사죄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사죄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세세한 사실이 어떻든 간에, 일본이 타국을 침략했다는 큰 줄거리는 사실이니까."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사진)가 17일 도쿄신문과 

단독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근 일본 사회 내부에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벌어진 식민 지배나 아시아 침략에 대해, 

일본이 도대체 언제까지 사과해야 하는가'라는 불만이 일고 있는 데 대해, 

'상대가 납득할 때까지'라는 답을 내놓은 것이다.

이날 도쿄신문 인터뷰에서 하루키는 최근 한·중·일 관계에 대해 

"지금 동아시아엔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루키는 "일본이 경제대국이고 중국도 한국도 개발도상국이던 시절에는 이런 문제가 억눌려 있었지만, 

중국과 한국의 국력이 커진 뒤 이런 구조가 무너지고, 봉인되어 있던 문제가 분출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상대적으로 힘이 줄어든 일본으로선 자신감 상실 같은 것이 있어, 

좀처럼 그런 전개를 솔직히 받아들이지 못한다"면서, 

세 나라 사이의 갈등이 진정되기 전에 "분명히 파란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아시아 문화권에는 아주 큰 가능성이 있고, 시장으로서도 매우 큰 양질의 시장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 뒤 "

서로 으르렁대서 좋을 게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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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보며 책 읽기]한국 남자들, 하루키처럼 '아베따위'라고 말할 수 없다

(출처조선일보 2015.02.09 김태훈 기자)


“제 주변의 ‘빛나는 여성’들은 모두 아베를 향해 ‘너따위에게서 일일이 빛나라는 식의 말을 듣고 싶지 않네요’라고 합니다. 
확실히 쓸데 없는 간섭입니다. 
특별히 빛나지 않아도 좋으니 여성들이 평범하게, 
공평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되는 겁니다.(중략) 
남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대체로 여성들도 할 수 있습니다.”

- “아베따위가…” 또 돌직구 던진 하루키(1월30일자 조선일보 국제면)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지난달 인터넷 웹사이트 ‘무라카미씨의 거처’를 열고 
독자들 질문에 대답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위에 인용한 기사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야심차게 추진중인 
‘여성이 빛나는 일본’ 정책에 대해 한 여성이 “나는 병 때문에 마음대로 일도 못하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아이도 낳지 못하고 있다. 빛나기가 참 어렵다”고 하소연하자 
하루키가 쓴 답글입니다. 
여성을 위로하는 ‘젠틀맨 하루키’의 면모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보도가 나가자 조선닷컴 댓글에 하루키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평화헌법을 개정해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하고 
위안부 강제동원 역사를 부인하는 아베의 행태를 보면 극혐(極嫌)이란 말, 이때 쓰는 거구나 
싶던 차였습니다. 그런데 일본 최고 인기 작가의 입에서 통렬한 아베 비판이 터져나오니 
시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비판의 아귀가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키가 이 글에서 비판한 것은 
아베의 여성정책이지, 우리가 분노하는 그의 역사인식과 일본 재무장이 아니니까요.

여성에 대한 주제라면, 하루키에겐 “아베 따위가”라고 말할 자격 충분히 있습니다. 
그는 말이 아니라 작품을 통해 여성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글을 써 왔습니다. 
그의 신작 소설집 ‘여자없는 남자들’(문학동네)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모두 7편이 수록됐는데, 각각의 이야기는 다 달라도 
주제는 단 하나, ‘여자의 가치를 몰라보는 남자는 불행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여자는 운전대 잡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 계십니까? 
그렇다면 이 소설집의 첫 수록작 ‘드라이브 마이 카’를 읽어보세요.
주인공 가후쿠는 음주운전을 적발당해 면허가 정지되자 임시 운전기사를 고용합니다. 
가후쿠는 ‘직업상 함께 일하는 남녀의 비율이 같고, 여자와 일할 때 오히려 더 편하게 느낄 정도’로 여성에게 우호적이지만 
운전대만큼은 여자에게 맡길 생각이 없었습니다. ‘운전은 남자가 낫다’는 거지요. 
그런데 카센터 사장의 추천으로 여성을 고용하면서 그 선입견이 깨집니다. 심지어 그녀의 눈부신 운전실력에 매료됩니다. 
그뿐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그녀에게 내면 깊은 곳 상처까지 내보이게 됩니다. 그에게는 암으로 사별한 
아내가 있는데, 생전에 속궁합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아내에게 딴 남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상처받습니다. 
대화를 하면서 그는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내가 그녀를-적어도 중요한 일부를-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거야’(49쪽)

운전 잘 하고, 남이 하는 말에 귀기울려 주고, 조언에 상처까지 보듬어주는 여자. 하루키의 여성은 이렇게 당차고 지혜롭고 
따뜻합니다.

또다른 수록작 ‘여자없는 남자들’에서 하루키는 마침내 이렇게 선언합니다. 
‘여자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얼마나 가슴아픈 일인지, 
그건 여자 없는 남자들이 아니고는 이해하지 못한다’(327쪽)

일본은 세계 3대 경제대국이지만 여성 정책만은 후진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아베의 ‘여성이 빛나는 일본’ 정책은 이런 현실을 타개하고 여성의 경제 참여를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구상입니다. 
그런데 외부의 시선은 차갑습니다. 
지난해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일본의 위미노믹스(Womenomics·여성의 경제 참여를 통한 경제성장)’라는 보고서에서 
남성이 주도하는 정치 사회 풍토, 여성 근로자를 배려해주지 않는 직장 문화가 일본에 위미노믹스의 정착을 방해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
CRS는 그 근거로 
▶현재 일본 남성 근로자 중 육아 휴직을 택한 사람의 비율은 2%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 
▶일본 근로자의 긴 노동시간과 업무 후 직장 동료와 종종 술자리를 갖는 문화가 
  자녀를 둔 여성 근로자에게 큰 부담이란 점 
▶세계 주요 선진국 중 가장 심한 남성 근로자와 여성 근로자의 소득 차이를 들었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하루키가 아베를 향해 “너따위”라며 무시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눈을 돌려 우리나라 현실을 봅니다. 
지난해 10월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세계 성평등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142개국 
가운데 일본은 104위에 머물렀습니다. 필리핀(9위) 중국(87위)보다 낮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117위로 일본보다도 낮습니다. 
아베는 2020년까지 여성 지도자를 30%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목표를 갖고 있습니까.

대한민국은 국회의원이 육군 하사를 ‘하사 아가씨’라고 부르는 나라입니다. 
장군이 군대 내에서 성폭행과 추행 문제가 발생하자 “여자도 명확한 거부 의사를 밝혀야 
한다”고 말하는 나라입니다. 
서울대 교수가 제자를 성추행하면서 “넌, 괴롭지? 교수가 뽀뽀해 달라고 하는데 해줄 
수도 없고 안 해줄 수도 없고”라고 하는 나라입니다.

하루키가 “한국 남자들 따위가”라고 한다면 뭐라고 항변할 수 있을까요. 
대답이 참 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