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5.05.23
![](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505/23/htm_2015052305440a010a011.jpg)
조정육 지음, 아트북스
420쪽, 2만2000원
불교에서는 경(經)이란 명칭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붓다의 메시지와 가르침을 기록한 책만 경전(經典)이라 부른다. 아함경(阿含經)· 화엄경(華嚴經)·법화경(法華經)·반야심경(般若心經)·금강경(金剛經) 등이 그렇다.
사람들은 왜 경전에 존경을 표하는 걸까. 그건 경(經)에 지혜의 정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인간과 세상과 우주를 관통하는 눈 말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똑! 똑! 똑!’하고 그 눈을 노크한다. 붓다의 직설과 일화를 담은 초기경전부터 후대에 등장한 대승경전까지 두루 아우르며, 가슴을 건드리는 한 구절을 뽑아서 내놓는다. 자신의 감상을 에세이로 푼 뒤에, 옛 그림에 대입해 다시 푸는 식이다. 그래서 경전과 저자의 일상과 옛 그림에 담긴 스토리가 장면을 전환하며 맛을 내는 융합의 비빔밥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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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유독 1동과 7동에만 매화 대신 벚꽃이 심어져 있는 이유를 궁리한다. 도로와 가까워 차량 소음과 사람들의 시선을 차단하려 키 작은 매화 대신 키가 큰 벚꽃을 심은 조경사의 뜻을 알고서야 무릎을 친다. “내가 별것 아닌 것으로 무시하는 것조차 사실은 별것 아닌 것이 아니었다. 말로 설명해도 알 수 없는 공안(公案)을 깨달은 심정”이라고 말한다.
이어서 옛 그림인 김홍도의 ‘매작도(梅鵲圖)’가 이미지와 함께 등장한다. 꽃 핀 매화 나무에 앉은 네 마리 까치의 그림이다. 저자는 “봄날의 절정을 목격한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걸작”이라고 그림을 소개한다. 작품을 읽어내는 솜씨가 정갈하고 친절하다. “매화 가지에서 놀던 한 마리가 날개를 펴고 날아가자 세 마리 까치가 날아가는 까치를 보며 일제히 짖는다. 날개를 쫘악 펼친 까치 덕분에 정적인 공간에 아연 활기가 돈다. 까악까악 짖어대는 까치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 밖에도 정선의 ‘사직노송도’를 놓고 유마 거사의 “중생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는 ‘불이(不二)법문’을 푸는 등 다양한 옛 그림이 등장한다. 경전의 바닥을 뚫어내는 눈밝음은 아니다. 대신 잔잔한 일상에서 지혜의 메시지를 하나씩 깨치고, 가꾸어가는 여정이 흐뭇하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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