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140] 광고주에게 시청자 실어나르는 TV

바람아님 2015. 5. 30. 07:29

(출처-조선일보 2015.05.30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녁 뉴스 말미에 그날의 주식 시황이 보도됐다. 
그런데 의외로 이 시간에 열광했던 건 주식 투자자들이 아니라 아이 엄마들이었다. 
빨갛고 파란 세모가 쉴 새 없이 점멸하는 화면에다 경쾌한 리듬이 반복되며 넋을 빼놓는 배경음악이 더해지자, 
아이들이 거짓말처럼 하던 일을 멈추고 TV를 주시했던 것이다. 
유난히 극성스러운 자녀를 둔 엄마들은 심지어 이 부분만 녹화해서 급할 때 틀어준다고도 했다.


	리처드 세라, ‘텔레비전은 사람들을 배달한다’, 비디오, 약 7분, 1973년.
리처드 세라, ‘텔레비전은 사람들을 배달한다’, 
비디오, 약 7분, 1973년.

미국 미술가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1939~)는 7분 남짓한 짧은 비디오 아트를 통해 

이처럼 사람을 홀리는 TV의 마력 뒤에 숨어 있는 불편한 진실을 설파했다. 

그의 비디오에서도 역시 예의 그 넋을 빼앗는 음악이 흘러나오지만, 

파란 화면 위로 천천히 밀려 올라가는 짧은 문장들을 따라 읽다 보면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든다. 

"텔레비전의 제품은 시청자다. 

텔레비전은 사람들을 광고주에게 배달해준다"가 그 첫 문장이다. 

그렇다. 

사람들은 대부분 프로그램이 방송사가 만든 제품이고 시청자가 그 소비자라고 착각하고 있지만, 

실제로 방송사의 '고객님'은 광고주다. 

시청률이 중요한 건 한 사람이라도 그 프로그램을 더 봐야 광고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라의 말대로 TV가 가르쳐주는 건 오직 '소비'뿐이다. 

드라마 여주인공은 시도 때도 없이 아이스크림을 퍼먹고, 

예능 프로 출연자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점퍼를 입고 나오고, 

시청자들은 자연스럽게 그것들을 구입한다. 

이렇게 TV는 '엔터테인먼트'라는 말랑말랑한 허울로 사람들의 선택을 조종하는 것이다. 

세라의 비디오를 보고 나면, 

TV를 볼 때마다 과연 이번에는 내가 어디로 배달되는가를 의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