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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C 유럽 최고 미녀 '시씨' 엘리자벳 황후, 오스트리아 먹여 살리네

바람아님 2015. 6. 4. 08:25

뉴시스 2015-6-2

 

"이것도 사야지." "저것도 주세요."

외국인으로 가득한 오스트리아 빈의 '쇤부른 궁전(Schloss Schonbrunn)'의 기념품 숍에서 늘 벌어지는 일이다.

여기서 '이것'과 '저것'은 어느 '미녀'로 패키지 등이 장식된 초콜릿, 머그잔, 클래식 음악 CD, 키홀더, 달력, 냉장고 자석, 보석함, 오르골 등 갖가지 기념품들이다.

심지어 쇼핑백 겉면까지 채운 그 미녀는 누구일까. '시씨(Sisi)'다.

시씨? 할리우드 스타는 당연히 아니다. 그렇다고 오스트리아 여배우도, 오페라 가수도, 스키 선수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누구일까.

 

↑ 【서울=뉴시스】독일 출신 프랑스 화가 프란츠 빈터할터가 1865년 그린 시씨 황후의 초상화. 오스트리아 빈 ‘시씨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 【빈(오스트리아)=뉴시스】김정환 기자 = 오스트리아 빈 ‘호프부르크 궁전’에 있는 ‘시씨 박물관’. ‘미하엘 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있다. ace@newsis.com

 

↑ 【빈(오스트리아)=뉴시스】김정환 기자 = 오스트리아 빈 ‘호프부르크 왕궁’의 ‘미하엘 문’. 이 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시씨 박물관’이 있다. ace@newsis.com

 

↑ 【빈(오스트리아)=뉴시스】김정환 기자 = 오스트리아 빈 ‘쇤부른 궁전’. 시씨 황후의 추억이 깃든 곳 중 하나다. ace@newsis.com

 

↑ 【빈(오스트리아)=뉴시스】김정환 기자 = 오스트리아 빈 ‘슈테판 대성당’ 앞 초콜릿 숍 ‘하인들’ 내 진열장. 갖가지 ‘시씨 초콜릿’이 총 다섯 칸 중 네 칸을 채우고 있다. ace@newsis.com

 

이미 고인이 된 지 100년도 훨씬 지난, 오스트리아, 정확히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통치한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1830~1916년)의 부인인 엘리자베스 아말리에 유진(1837~1898) 황후다.


당대 유럽 최고였다는 미모와 기품 넘치는 모습의 엘리자베스 황후가 후대 오스트리아 국민의 주머니를 채워주고 있는 셈이다. 오스트리아인들이 엘리자베스 황후를 처녀 시절 애칭이었다는 시씨로 지금까지도 불러줄 만하다.

시씨의 생애는 옥주현을 타이틀롤로 한 빈 뮤지컬 '엘리자벳'으로 국내에도 알려졌다.

물론 뮤지컬은 '죽음(토드)'이라는 캐릭터를 내세워 새로운 해석을 내렸지만, 줄거리는 실제와 크게 차이 없다.

독일 남부 바이에른의 영주 막시밀리안 요제프 공작의 딸인 16세 소녀 시씨는 자신의 친언니 헬레나와 결혼을 하기 위해 무도회에 참석한 사촌오빠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와 만난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조신한 헬레나를 며느리로 삼고 싶었던 황제의 어머니이자 시씨의 이모인 소피의 반대를 이겨내고, 1854년 4월 빈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 여기까지는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소설이다.

자유분방하고 감성적인 성격의 시씨는 시어머니 소피로 대표되는 황실의 엄격한 규율과 빈틈없는 통제에 짓눌려 고통스러워한다. 그가 기댈 곳은 황제뿐이었고, 숨 쉴 수 있던 것은 오직 그의 사랑이 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시씨는 1855년 두 살배기 딸 소피를 의문의 병으로 잃는다. 이어 그녀만을 사랑하겠다던 황제는 여배우 카타리나 슈랏과 외도를 범한다. 시씨는 당시 받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자신의 미모에 대한 극단적인 탐닉으로 푼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살인적인 다이어트를 이어간 결과, 그의 허리 사이즈는 20인치였던 것으로 전해질 정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들인 황태자 루돌프는 30세의 나이에 17세인 마리아 베체라 남작부인과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고통스러워 하다 1889년 동반 자살한다. 후대 오스트리아인들은 이 흥미로운 스토리를 뮤지컬(국내에서는 안재욱이 주연한 '황태자 루돌프')로 만들어 전 세계에 수출했지만, 시씨로서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일련의 사태로 우울증에 시달리던 시씨는 황제 곁을 떠나 헝가리에서 머물며 유럽 각지를 여행한다. 화려한 드레스 대신 검은 상복 차림이었다. 시씨는 죽는 날까지 상복을 벗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이 보듬어주지 못한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옷으로 대신한 듯하다.

당시 제국의 외무장관이자 헝가리 총리인 언드라시 줄러 백작과의 염문설도 퍼졌지만, 확인되지 않았다. 쇤부른 궁전 오디오 가이드에서 "시씨의 염문설이 있지만, 여기서는 언급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오스트리아인들은 자신들의 사랑을 받는 시씨의 부정적인 면이 부각되는 것을 극히 경계할 정도다.

1898년 9월10 스위스 제네바의 레만 호에서 배에 오르던 엘리자베스는 무정부주의자인 이탈리아인 루이기 루체니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암살 동기에 관해 뮤지컬에서 루체니는 "내가 그녀를 암살한 것은… 그녀가 원했기 때문이오!"라고 답하지만, 실제로는 밝혀지지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시신으로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카푸치너 성당 지하의 황제 납골당(카이저 그루프트)에 안장됐다.

한때 '실수'를 범하기는 했지만, 평생 마음속으로는 엘리자베스만을 사랑해 그녀가 죽은 뒤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내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그녀는 모를 것이야"라고 입버릇처럼 말한 황제도 1916년 사망 후 그녀의 곁에 묻혔다.

미모에 드라마틱한 생애까지 곁들여지면서 엘리자베스는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관광상품'이 됐다.

실제 합스부르크 왕가의 메인 궁전인 '호프부르크 왕궁(Wien Hofburg)'은 아예 한쪽에 '시씨 박물관'을 차려놓고, 관광객들이 그녀의 황후로서의 삶을 훔쳐볼 수 있게 하고 있다.

또 18세기 오스트리아의 전성기를 열어 '국모'로 추앙받는 마리아 테레지아 여대공(1717~1780)이 세운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별궁인 쇤브룬 궁전도 내부 전시에서 테레지아가 압도하는 가운데 시씨와 요제프 1세에게 어느 정도 비중을 실어 보조를 맞추고 있다.

두 곳 모두 기념품숍에서 시씨를 내세운 다양한 상품들로 관광객을 유혹하는 것은 물론이다.

시씨 상품화에 나선 것은 왕궁들뿐만 아니다.

시씨 박물관을 나와 '미하엘 문'을 통과해 명품숍이 즐비한 그라벤 거리를 지나면 빈의 상징인 '슈테판 대성당'을 만나게 된다. 성당 바로 앞에 있어 하루에도 수백 명이 들락거리는 유명 초콜릿 숍 '하인들(HEINDL)'에서 오스트리아 출신 '음악 신동'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의 초상화로 포장지를 꾸민 '모차르트 초콜릿' 못잖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시씨 초콜릿'이다.

빈 공항 면세점 초콜릿 코너에서도 시씨가 헤로인을 맡아 오스트리아를 떠나는 외국인이 마지막 남은 1유로(약 1200원)까지 탁탁 털고 돌아가게 한다. 오스트리아의 특산품이 초콜릿인 것을 생각하면 시씨가 차지하는 위치를 가늠해 볼 만하다.

다음은 100년여의 세월을 거슬러 시씨를 만날 수 있는 빈의 명소들이다.

◇호프부르크 왕궁의 시씨 박물관(Sissi Museum)

호프부르크 왕궁은 제국 재상 집무관과 시씨가 살았던 아말리에궁에서 총 22개 실을 '시씨 박물관' '(프란츠 요제프 1세)황제의 아파트먼트' '(러시아)알렉산드르 황제의 아파트먼트'라는 이름으로 공개하고 있다.

이중 시씨 박물관은 제1~6실로 각각 '죽음(제1실)' '시씨 신화(제2실)' '소녀시대(제3실)' '궁정 생활(제4실)' '도피(제5실)' '암살(제6실)' 등 테마에 따라 데스마스크(죽음), 로미 슈나이더(1938~1982년) 주연의 오스트리아 영화 '시씨'(감독 에른스트 마리슈카·1955) 포스터(신화), 그네(소녀시대), 드레스(궁정 생활), 검은 상복(도피) 등 유품, 미술품, 사진 등 시씨와 관련된 물품들을 전시한다. 심지어 시씨가 에게 암살당할 때 쓰인 줄칼(암살)까지 전시되고 있다.

황제의 아파트먼트(제7~19실)도 제15~19실은 '거실 겸 침실(제15실)' '화장대와 트레이닝룸(제16a실)' '화장실과 욕실(제16b실)' '베르크의 방(제16c실)' '큰 살롱(제17실)' '작은 살롱(제18실)' '큰 대기실(제19실)' 등으로 명명되고, 갈색 철제 침대(제15실), 화장대(제16a실) 구리 욕조(제16b실) 등 각 방에 걸맞은 시씨의 유품들로 당시 모습을 꾸며 그의 생전 모습을 더듬어볼 수 있게 했다.

◇쇤브룬 궁전 내 시씨의 공간

무려 1441개실을 가진 쇤브룬 궁전에서 일반에 공개된 것은 2층의 40개 실에 불과하다. 그중 대부분은 쇤브룬 궁을 건립한 마리아 테레지아 여대공의 차지이고, 시씨와 황제는 제1~9실까지를 할애받았다.

그중에서도 온전히 시씨의 몫은 '테라스의 작은 방(제6실)' '계단의 작은 방(제7실)' '파우더 룸(제8실)' 등 3개 실 뿐이다. 그 밖에 시씨의 초상화가 진열된 '프란츠 요제프의 서재(제4실)'와 시씨가 황제를 사랑했던, 결혼 초기 몇 년간 함께 잠자리했던 '공동 침실(제9실)'에서도 시씨의 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궁전 내부를 둘러보고 기념품숍에 도달하면 어느 덧 테레지아는 간 곳 없고, 시씨가 여주인공 행세를 한다는 사실이다.

ac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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