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6.13 전원경·'런던 미술관 산책' 저자)
- 뭉크의 1901년작 ‘다리 위의 소녀들’. /오슬로 국립미술관 소장
교환 학생 프로그램에 참가한 적이 있다.
이제는 그 프로그램의 주제도, 함께했던 동료들의
얼굴도 가물가물하지만 오직 한 가지,
환한 여름밤만은 기억 속에 선명하다.
6월이 되면 북유럽에서는 해가 지지 않는 밤인
'백야'가 시작된다. 밤 열한 시가 될 때까지
낮의 빛은 사라지지 않고 사람들은 창에 두꺼운
커튼을 친 채 애써 잠을 청한다.
노르웨이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에게 이런 백야의 풍경은 익숙한 장면이었을 것이다.
뭉크 하면 흔히 '절규'라는 핏빛 그림을 떠올리지만
그의 모든 그림이 이처럼 음울한 장면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리 위의 소녀들'은 뭉크가 여름마다 머무르던
'다리 위의 소녀들'은 뭉크가 여름마다 머무르던
오슬로 남쪽의 휴양지 아스가르트스트랜트(Aasgaardstrand)에서 그린 작품이다.
한적한 여름 저녁, 세 명의 소녀가 다리 위에
나란히 서서 강물을 바라본다. 그림 속 풍경은
이른 저녁 같기도 하고 한밤중이 가까운 시각
같기도 하다. 대기엔 아직 환한 빛이 가득한데
하늘 저편에선 이미 레몬빛 달이 떠올랐다.
커다란 나무와 집들이 푸른 강물에 비치는 장면이 꿈속처럼 신비스럽다.
'다리 위의 소녀들'은 10여년간 화가가 해마다 그린 주제여서 어떤 해의 작품에서는 소녀들이 다 큰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또 어느 해에는 소녀들을 바라보는 남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뭉크는 평생 신경쇠약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렸던 화가였다.
뭉크는 평생 신경쇠약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렸던 화가였다.
'절규'는 그의 고통스러운 내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리 위의 소녀들'에 나타난 온화한 색채와 투명한 강물, 서늘하고도 신비스러운 백야의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이 화가의 삶이 늘 우울하고 어둡지만은 않았을 것이라는, 알지 못할 안도감이 살그머니 마음에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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