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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프리다] [2]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바람아님 2015. 6. 19. 09:44

(출처-조선일보 2015.06.19 김정운 문화심리학자·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내가 본 프리다] [2]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쓰리랑 부부의 一字눈썹인데… 왜 표정은 무덤덤할까

상대 무시하는 느낌의 자화상
자신의 꼬일 대로 꼬인 삶에 대한 복수가 아닐까


	김정운 문화심리학자·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김정운 문화심리학자·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그녀의 검고 진한 눈썹은 영락없이 쓰리랑 부부의 김미화가 일자 눈썹으로 붙이고 나오는 
검은 테이프였다. 그녀의 입술 위로는 연한 수염까지 있었다. '도대체 이 여자는 뭔가' 했었다. 
내가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이다. 
그러나 그림 속의 그녀 표정은 내게 아주 익숙했다.

고교 시절 난 선생님 앞에 불려나가면 애써 무표정한 얼굴을 했다. 
그 어떤 죄송함이나 잘못을 인정하는 표정 따위는 절대 짓지 않았다. 
따귀라도 한 대 맞으면 나는 더욱 무덤덤하고 아주 평온한 표정으로 선생님의 눈을 쳐다보았다. 
매번 아주 '뒈지도록' 맞았다. 숨 막히는 학창 시절을 달리 저항할 방법은 없었다.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이 바로 그런 표정이었다. 
그녀의 자화상은 죄다 상대방을 무시하는 느낌이다. 얼굴은 약간 옆으로 돌아가 있다. 
그러나 보는 방향은 정면이다. 그리고 완벽한 무표정이다. 
그녀의 자화상은 자신의 꼬일 대로 꼬인 삶에 대한 복수였다.

칼로의 그림은 철저하게 바람둥이 남편 디에고 리베라와의 관계에서 나왔다. 
그녀를 그림 그리게 한 것도 이혼과 재혼을 반복한 남편 리베라였고, 
그녀가 그토록 많은 자화상을 그릴 수밖에 없었던 것도 남편의 배신으로 인한 좌절감 때문이었다. 
물론 평생 그녀를 괴롭혔던 장애와 질병도 또 하나의 원인이었다. 
그녀는 '여자가 자신을 사랑하면 할수록 더욱 괴롭히고 싶다'는 가학적 남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마조히즘적 아내를 자처했다. 
그리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현명하고 뛰어난 여자가 형편없이 못된 바람둥이 남자에게 속아 함께 사는 경우를 가끔 본다. 
바로 헤어질 것 같은데, 그녀들의 대부분은 그 못된 남편의 곁을 평생 떠나지 못한다. 
그 못된 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프리다 칼로가 남편 디에고 리베라와 이혼1년 만에 재결합한 직후 그린‘땋은 머리의 자화상’(1941년 작).

 프리다 칼로가 남편 디에고 리베라와 
이혼1년 만에 재결합한 직후 그린 
‘땋은 머리의 자화상’(1941년 작). 

이혼 뒤 긴 머리카락을 잘랐던 프리다는 
다시 머리를 길렀지만 
예전처럼 단정한 헤어스타일은 아니다. 
/베르겔재단 제공

'과잉 정당화(over-justification)'다. 
그녀들은 형편없는 남자를 선택한 자신의 행동을 어떠한 식으로든 합리화해야 한다. 
아니면 자신의 그 형편없는 선택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이다. 
그 못된 남자를 사랑했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편이 훨씬 더 쉽고 편하다.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삶을 그림으로 극복하려 했던 그녀의 치열한 삶에 위로받는 모양이다. 
그녀는 그 엄청난 고통을 견디며 이겨냈는데, 내 삶의 이 정도 고통 따위야 하는 거다. 
그러나 그런 식의 해석은 '집단적 과잉 정당화'일 수 있다. 
무표정한 그녀의 자화상은 그렇게 싸구려로 위로받으려 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그녀의 표정이 아주 익숙한 내겐 그렇게 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