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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쫓겨나는 아버지들

바람아님 2015. 8. 25. 10:07

 세계일보 2015-8-24

 

유사 이래 아버지가 아들에게 쫓겨난 경우는 많다. 인도의 그 유명한 타지마할을 만들어 죽은 왕비에게 바친 황제도,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도 아들과 싸운 뒤 감금되고 쫓겨났다. 롯데그룹의 창업자 신격호는 경영권 싸움에서 장남을 편들다 차남에 의해 롯데호텔 34층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낸다. 아들과 아버지의 전쟁은 흔한 일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증오한다는 ‘오이디푸스(Oedipus) 콤플렉스’는 현실감이 있다. 이 콤플렉스는 아버지의 권위가 강할수록 더 심해진다고 한다. 아들의 배신은 아버지 탓도 크다는 의미다.

 

아버지가 아들에게서만 쫓겨나는 것은 아니다. 일본 가구 기업 ‘오쓰카’의 창업주는 딸에게 쫓겨났다. 장녀 구미코(47) 사장이 2009년 취임한 뒤 전통적인 고가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저가 대중화 트렌드로 바꾸자 아버지 가쓰히사(72) 회장이 분노했다. 아버지는 지난해 7월 주주총회를 열어 딸을 해임하고 사장에 복귀했다. 그러나 딸은 올 1월 아버지의 120억원 적자 실적에 불만을 품은 주주들을 규합, 아버지를 사장 자리에서 몰아냈다. 아버지가 2월25일 공개 기자회견을 갖고 “사장 선임을 잘못했다. 나쁜 애를 키웠다”고 폭언을 퍼붓자 장녀는 다음날 “아버지의 경영방식으론 미래가 없다”고 공개적으로 일축했다. 이어 3월27일 주주총회를 열어 아버지를 회장에서 해임시켜버렸다.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47) 대표는 지난 20일 당 창설자인 아버지 장마리 르펜(87) 명예대표를 출당시켰다. 백인우월주의와 반유대주의 발언을 일삼는 아버지의 극우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서다. 국민전선은 지난해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25%의 득표율을 얻어 프랑스 정당 중 1위를 차지했다. 이런 당의 앞날에 아버지의 케케묵은 언행이 도움이 안 된다고 본 것이다. 르펜은 국민전선을 창당한 뒤 40여년간 이끌었고 2011년 대표직을 딸에게 넘겨주었다. 아버지 르펜은 딸의 반란에 “2017년 대선에 딸에게 투표하지 않겠다”는 말로 비통함을 표시했다.

 

프로이트는 아들이 아버지와 경쟁하는 심리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부르면서, 딸이 아버지를 갈구하는 심리를 ‘엘렉트라(Electra) 콤플렉스’라고 불렀다. 아들에 이어 딸마저 아버지를 몰아내는 이 사례들은 혼란스럽다. 세상이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정신분석 이론이 낡은 것인가.

 

백영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