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5.08.2.
김진국/대기자
일부에서는 북한이 도발해도 어물쩍 합의하고, 퍼주기만 하는 악순환이라고 비판한다. 이번에는 단단히 매운맛을 보여줘야 한다고 분개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래서 어디까지 갈 것인가. 도발 원점을 타격하고, 무력시위로 응징하는 대응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이 목표일 수는 없다.
중요한 건 국민의 안전이다. 위험 요인인 북한은 관리해야 할 대상이다. 위험한 집단일수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제재를 가하건, 대화를 하건, 아니면 무력시위를 하건, 어떤 방식으로건 우리가 최대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범위 안에 둬야 한다.
이번 합의를 보면 1·21 청와대 습격사건이 생각난다. 1968년 북한 특수부대원 31명이 남파됐다 대부분 사살됐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목표였다. 김일성은 72년 5월 평양을 방문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에게 “나도 몰랐다. 우리 내부의 좌경맹동분자들이 한 짓”이라고 사과했다. 그러고는 남북 최초의 합의문인 ‘7·4 공동성명’에 합의했다.
그럼에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지뢰 도발이 계속되는 걸 보면 그날의 추억이 환상처럼 느껴진다. 7·4 공동성명 2년 뒤 육영수 여사가 피살됐다. 92년 비핵화 공동선언, 94년에는 미국과 제네바합의까지 하고도 플루토늄탄에 이어 우라늄탄까지 실험하고 있는 북한을 보면 도대체 합의가 무슨 소용인지 회의를 느끼는 심정이 이해가 간다. 그러면 압박으로 해결될 것인가. 보수 정권 7년의 실패는 그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해결이 안 되면 관리라도 해야 한다.
지난 7월 미국은 쿠바와 외교 관계를 회복했다. 61년 단교한 이후 54년 만이다. 피그스만 침공을 비롯해 무수히 미 중앙정보국(CIA)이 암살 공작을 벌이고, 쿠바를 고립시켰다. 그러나 그런 공작이 오히려 쿠바를 외통수로 몰고, 미국의 골칫거리로 만들었다. 외부의 압박은 거꾸로 독재의 명분이 됐다. 정권의 위기는 바깥이 아니라 안에서 오는 것이다.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일관성이다. 우리 정부가 바뀔 때마다 대북정책 기조가 뒤집혔다. 5년 단임 대통령이 된 이후 더 심각해졌다. 같은 정당이라도 그대로 이어받는 경우가 드물다. 북한이 5년마다 약속을 뒤집고도 남쪽 탓을 할 구실을 만들어 준 것이다.
선거 때만 되면 대통령 후보들은 ‘자신만의 정책’을 내세운다. 별로 다를 게 없어도 이름부터 바꾼다. 취임하면 지난 정부의 사업은 뒷전이고 ‘자신의 업적’ 만들기에 매달린다. 여론도 내용보다 누가 제안하느냐, 합의했느냐에 따라 찬반이 갈린다. 타협하라고 해 놓고 보수 정권이 합의했다고 ‘그게 사과냐’며 어깃장을 놓는다. 통일 문제는 수십 년을 공을 들일 사업이다. 5년짜리 정책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이번에 야당의 협조가 돋보였다. 한목소리로 북한의 도발을 비판하고 사과를 요구했다. 천안함 폭침 때를 생각하면 정말 의외다. 당장의 작은 전투는 쉽게 이길 수 있다. 하지만 ‘내 임기’만 챙기는 구조로는 장기적 전쟁의 판세를 장담할 수 없다. 초당적 협력과 장기 구상을 공유할 방안을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 정권과 관계없이 대북협상을 담당할 수 있는 전문가도 보호해야 한다.
남북 관계는 정상의 결단이 필요하다. 이번에 2인자들이 대좌했지만 정상들의 아바타였다. 서울과 평양에서 정상들이 모니터로 지켜보며 수시로 지시했다. 통 큰 결단을 바란다면 정상들이 직접 마주 앉아 대화하는 게 빠른 길이다. 당국회담이 열리면 정상회담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김진국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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