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9.01 김대중 고문)
인민 봉기와 권력 이완 부를 심리전은 北정권 최대 공포
대화·이산가족 상봉 매달려 '최강 전력'인 확성기 접고
對南 사이버공격 대책 없이 野 무차별 '정보 공개' 요구
우리는 이번 8·25 남북 교섭에서 우리 군(軍)의 대북(對北) 확성기 방송의 존재감을 새삼 확인했다.
북한 측이 대남 교섭의 초점을 오로지 확성기 방송 중단에 둔 것은 그 방송이 저들에게 얼마나
파괴적인가를 역설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우리로서는 그저 고식적이고 형식적인 심리전(心理戰)의
일환으로 여겨왔던 확성기 방송이 이처럼 수훈 갑(甲)의 역할을 한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다.
우리는 왜 이처럼 효과적이고 파괴적인 대북 무기(武器)를 그동안 사장시켜온 것일까?
지난 2005년 남북 대화와 정상회담에 목을 맨 우리 측 위정자들이 그 무기를 자진 헌납했었다.
이유인즉 대화를 바란다면서 상대방과 그 체제를 비난·비판하는 것은 온당치 않으며 북측과 전쟁하지
않기 위해서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북측도 우리에게 그랬으면 우리도 호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북측은 시도 때도 없이, 그것도 무차별적으로 우리 지도자와 나라를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로 매도해왔으며
간간이 무력 도발까지 일으켜 우리 측 인명을 살상했다. 그런데도 대화 지상론자들과 친북(親北) 인사들은 오히려
우리 측을 비난하며 방송을 자제시켜 왔다.
지금이라도 북측이 도발을 삼가며 예의를 지킨다면 우리로서도 굳이 선제적으로 나갈 이유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21세기 들어 전쟁의 수단과 방식 자체가 변화하고 있고, 이에 대처하는 일이 우리의 안보적 당면 과제가 되고 있다.
이제 전쟁은 재래식 무기로 상대방을 때리고 보병이 고지를 점령해 국기를 꽂는 '땅따먹기' 방식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전선(戰線)도 없고, 전시(戰時)도 따로 없다. 승패는 무기의 싸움에서 갈리는 것이 아니라 심리전과 사이버전(戰)에서
판가름 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전쟁의 공포를 내세우는 자들은 북측의 장사포와 핵무기를 거론하지만 약간의
시차만 있을 뿐 그것은 한·미의 대량 보복을 불러오고 결국 남과 북 모두의 공멸을 의미할 뿐이다.
오늘의 심리전은 태평양전쟁 때 미군의 귀를 사로잡았던 일본 방송의 '도쿄(東京) 로즈' 같은 낭만적, 멜로 드라마적(的)
심리전이 아니다. 지금의 심리전은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허위적이고, 당신이 받들고 있는 지도자가 얼마나
취약하며, 당신이 믿고 있는 신념이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곧바로 치고 들어간다.
모든 전사(戰士)와 인민의 믿음을 서서히 무너뜨리는 가공할 무기인 것이다.
북한의 정치적 위기는 두 갈래에서 올 수 있다. 하나는 인민의 봉기이고, 다른 하나는 권력 내부의 이완 내지 이탈이다.
인민의 봉기는 김정은 정권의 엄혹한 감시와 가차 없는 말살정책으로 당분간 조직적 움직임이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의 확성기 방송뿐 아니라 대북 중파 방송과 전단이 상승적으로 작용할 때 그것은 점차 북한 당국의
차단벽을 뚫고 인민의 심장에 도달할 위력을 갖추고 있다.
늘어나는 탈북 현상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우리의 심리전이 보다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북한 권력 내부의 이완 측면이다.
장성택 처형 이후 김정은의 칼에 묻힌 피는 부하들의 것이었다.
김정은의 오만한 권력 과시는 권력 내부자들의 불안감을 조성하기에 충분하고, 이들은 이제 보신(保身)과 눈치 보기에
급급한 지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심리적 접근은 북한 심장부에 새로운 국면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전선에 배치된 군 지휘층과 사병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믿음을 흔들고 바깥세상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데
대북 확성기 방송만 한 '무기'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우세한 고지를 누리는 곳이 심리전이라면 북한은 사이버전에서 우리를 괴롭힐 능력을 키워가고 있다.
사이버 도발의 주체나 원점을 교묘히 숨길 수 있는 장점을 북한은 전면 활용하고 있다.
이른바 '사이버 전사(戰士)'만도 수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자료에 의하면 한국에 대한 사이버 공격은 시간당 평균 4만건(件),
하루 100만건에 달한다. 피해 규모도 3조6000억원이나 된다. 대부분 북한 소행으로 보지만 확인이 어렵다는 데 문제가 있다.
북한은 '우리 민족끼리' 등 140여 개에 달하는 대남 사이트로 우리를 매일 공격해대고 있다.
결국 심리전에서 고삐를 바짝 죄는 한편, 사이버전에서 대응력을 키워가는 것이 바로 우리 안보의 요체다.
그런데 심리전에서는 매번 북측에 끌려다니며 양보하고, 사이버 전선에서는 무방비로 일관해온 것이 저간의 사정이다.
심리전에서는 대북 방송 중단을 요구하고, 사이버전에서는 '정치 사찰'을 구실로 30여 개에 달하는 국정원의 자료를 요청하는
따위의 몰상식한 행위가 야권 지도층에서 버젓이 횡행하는 것도 문제다.
거기다가 별다른 '보장'도 없이 이산가족 상봉 등 한두 가지 유인책에 이끌려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을 약속하고
전단 살포를 억제시키는 정부의 행적은 우리를 여전히 불안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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