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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병식은 생중계 영상외교, 박 대통령 ‘표정 전략’ 필요/시진핑 주석에게 터놓고 말해야

바람아님 2015. 9. 1. 10:09

[중앙일보] 입력 2015.08.31

집권 후반기 첫 외교전, 성공의 조건
사진?영상 한 장면에 상징성 커져
“손짓 등 작은 부분도 신경 써야”
북핵문제, 공조 확인 수준이 적절
미·중 사이 협력 촉진자 역할 해야

천안문 앞엔 마라톤 관중도 통제 9월 3일 중국의 항일 승전 70주년 기념행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천안문에 올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열병식을 지켜본다. 생중계될 박 대통령의 표정 하나하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30일 세계육상선수대회 여자 마라톤에 참가한 선수들이 천안문 앞을 달리고 있다. 중국은 최고 수준의 통제 조치를 시행 중이며, 이날 대회도 천안문 인근에서의 길거리 관람이 금지됐다. [신화=뉴시스]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항일 승전 70주년 기념행사(전승절·9월 3일)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새로운 도전이다. 집권 후반기 첫 외교 일정일 뿐 아니라 동북아 외교의 형세를 가늠할 중요한 외교 이벤트다. 전문가들은 그만큼 고려할 요소가 많다고 우려하고 있다.

 우선 박 대통령의 방중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아선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희옥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장은 “중국은 박 대통령이 얼마나 큰 결단을 내렸는지 잘 알고 있고, 양국이 이미 그 외교적 의미를 교환했다”며 “중국이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서 모든 현안에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기보다는 후반기 중요한 외교적 고비마다 협력해 주는 식으로 시차를 두고 화답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외교 전문가들은 특히 네 가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①북한 이슈에 너무 매달리지 마라=9월 2일 한·중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인 북핵 문제에서도 중국의 획기적인 지지나 문구에 집착하기보다 협력의지를 재확인하는 수준이면 족하다. 북·중 사이엔 최근 최용해 북한 노동당 비서의 전승절 참석 등을 계기로 모처럼 소통 채널이 복원됐다. 중국의 대북 레버리지 활용을 위해서도 북한을 지나치게 자극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주대 김흥규 중국정책연구소장은 “북한은 핵 개발을 위해 향후 2~3년 더 고립을 감수할지 말지 고민 중이고,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통해 관심을 동북아에서 서쪽으로 옮길지 결정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며 “이 시점에서 한국은 자연스럽게, 조용하게 북핵 문제 등에서 중국과 공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②한·중은 한·미·일의 보완재다=미국 변수도 감안해야 한다.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협력의 촉진자 역할을 해야지, 한·중 협력과 한·미·일 공조가 대체관계에 있거나 한국이 제로섬식 선택을 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란 우려가 나온다. 고려대 국제대학원 김성한 교수는 “남북 고위급 합의 등으로 북한 문제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부각됐고, 10월 한·미 정상회담도 예정돼 있는 만큼 이번 방중에서 한·미·중 협력을 강화하자는 제안을 해 볼 만하다. 기본적으로 미·중·일 모두를 대상으로 ‘핵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③전승절은 전 세계에 생중계된다=중국의 전승절 행사는 관영 중국 중앙(CC)TV 등에 의해 생중계된다. 외교가 소식통은 “팔로군(八路軍) 등 항일전 참전 ‘영웅 모범 부대’ 대표들이 사열하는데 우리 대통령이 너무 환하게 웃는 장면이 전 세계로 전파되면 좀 난감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화여대 박인휘(국제관계학) 교수는 “최근엔 ‘영상외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상들의 사진이나 영상 한 장면에 큰 상징성이 부여되곤 한다. 열병식 행사 중 표정·제스처 등 디테일까지 신경 써야 한다”고 했다. 최용해 비서와 마주칠 경우의 ‘표정 관리’도 중요하다고 했다.

 ④일본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마라=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전승절에 참석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일본 정부는 “유엔의 중립성을 훼손시킬 수 있다”고 항의했다. 산케이(産經)신문은 30일 “일본 정부는 ‘(유엔이) 평화 구축이라는 책무를 이행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비난 성명을 정식으로 발표하라”고도 촉구했다. 반면 중국 신화통신은 “종전 70주년 기념일을 맞아 패전국인 일본은 당연히 반성과 속죄를 하고 같은 범죄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해야 하는데도 국제 지도자들의 열병식 참석에 왈가왈부하고 있다”며 “이는 천하의 큰 웃음거리(滑天下之大稽)”라고 반박했다. 중·일의 이 같은 충돌은 하반기 가장 큰 외교 과제로 한·중·일 3국 정상회담 개최를 추진하려는 한국 정부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박 교수는 “중·일을 모두 고려한 세련된 외교를 할 때”라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특별기고/여영무]박 대통령, 시진핑 주석에게 터놓고 말해야

 

동아일보 2015-08-31 03:00:00 수정 2015-08-31 03:00:00

여영무 남북전략연구소장

 

박근혜 대통령은 9월 3일 중국의 항일 승전 70주년(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하기로 확정했다. 박 대통령이 북한의 비무장지대 지뢰 공격과 포사격으로 인한 남북한 군사적 위기가 일단락된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게 돼 다행이다.

한중 관계는 ‘전략적 협력동반자’란 외교적 등급처럼 여러 면에서 복잡 미묘하다. 한국은 중국의 라이벌인 미국과 동맹관계이고 중국은 한국과 군사적으로 주적인 북한과 동맹(朝中相互友好條約)을 맺고 있다. 북-중 관계는 4년 전 김정은 정권 출현 후 점차 나빠져 이번 전승절 기념식에 김정은이 불참할 정도로 최악의 상태지만 중국은 전략상 북한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고 있다. 과거에 비해 북한 정권에 대한 통제력도 약화되었지만 중국이 여전히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이에 반해 한중 관계는 이념 차이에도 불구하고 시진핑(習近平) 집권 이후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시 주석이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한 것이나 빈번한 정상회담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서도 이런 사정을 알 수 있다. 수교 이후 양국 간 교역은 지난해 2354억 달러에 인적 교류는 1000만 명을 넘어섰다. 대중 무역은 전체의 25%로 미국을 훨씬 앞지른다.

중국은 그동안의 국력 신장과 군사력 위용을 내외에 과시하기 위해 성대한 전승절 70주년 기념식을 야심 차게 준비해왔다. 전승절 기념식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30개국 지도자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 각국 대표 59명이 참석한다. 일본은 정부 대표단도 파견하지 않으며 미국은 주중 대사가 참석하기로 했다.

중국은 박 대통령의 전승절 기념식 참석을 통해 일제 침략과 식민통치의 공통 피해국인 한국과 친교를 다지며 항일 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의 승리를 부각시키려 한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굴기에 연합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을 견제함으로써 한미일 군사동맹 고리를 약화시키려는 의도도 있다. 중국이 미국의 동맹인 한국의 박 대통령 참석에 꽤 공을 들인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한국도 박 대통령의 참석을 통해 얻을 것이 적지 않다. 중국은 사실상 동북아의 패권국이면서 한국 통일의 상대방인 북한에 대해서도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다. 한국은 그동안 중국과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대척점에 있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동북아와 세계 평화를 위해서 건설적 중재자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한국은 북핵 해결과 한반도 평화 안정, 그리고 통일을 위해서 중국의 도움이 절실하다. 최근 일촉즉발의 남북 간 군사적 갈등 해소에도 일정 부분 중국의 건설적 역할이 있었다.

시 주석은 박 대통령을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라고 부를 만큼 가까운 사이다. 미국 워싱턴 정가에서 한국의 ‘중국경사’가 심하다고 우려할 만큼 외견상 한중 관계는 가깝다. 그럼에도 중국은 북핵 문제 해결과 통일을 위해서 가시적 역할을 하지 않아 우리의 애를 태우고 있다. 주철기 대통령외교안보수석은 북한의 포격 도발이 있던 20일 베이징을 방문해 한중 정상회담 의제 등을 논의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9월 2일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모든 제안들을 한꺼번에 꺼내 놓은 뒤 터놓고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북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중국의 고강도 압력 행사, 이를 위해 기름 공급 제한 등 모든 유엔 제재의 엄격한 적용, 그리고 탈북자들에게 국제법에 따른 피란민 처우 등을 요구해야 한다. 이번에 확보한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박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기념식 참석은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고심 끝에 내린 어려운 결정이다. 시 주석도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박 대통령은 북한의 이번 비무장지대 목함 지뢰 설치와 포격처럼 작은 도발이 자칫 전면전으로 확대돼 동북아에 가공할 대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북핵 문제 등 매사에 대북 통제력을 최대한 행사해 줄 것을 시 주석에게 강력히 요청해야 한다. 지금까지 시 주석이 보여주었던 따뜻한 미소와 한중 간 우호적 분위기가 한국 통일을 위해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났으면 한다.

여영무 남북전략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