其他/최재천의자연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33] 균형 외교와 HQ

바람아님 2015. 9. 8. 09:04

(출처-조선일보 2015.09.08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이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21세기 국가에서 대통령의 가장 큰 덕목은 
외교정책"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균형 외교'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도랑에 든 소'와 같다. 미국 풀도 먹어야 하고, 중국 풀도 먹어야 
한다"며 한·중, 한·미 관계는 물론 북·중, 남북 관계도 잘 풀어달라고 주문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IQ(지능지수)와 EQ(감성지수) 못지않게 HQ(Historical Quotient·역사 지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관련 자료들을 축적하고 있다. 언젠가는 책을 쓸 계획으로 국가의 역사 인식은 물론 
진화적 축적을 가늠할 종(種)의 역사도 분석하고 있다. 왜 어떤 종은 살아남고 어떤 종은 절멸했는가? 
우리는 5000년 역사 동안 중국·몽골·일본·미국의 틈바구니에서 영욕의 역사를 견뎌낸 민족이다. 
다시금 선조들의 탁월한 역사 지수를 환기할 때가 됐다.

하는 김에 핀란드 역사 지수도 함께 분석했으면 한다. 
2005년 미국 UCLA의 석학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과거의 위대했던 문명은 왜 몰락했는가'라는 부제를 지닌 책 
'문명의 붕괴'를 출간했을 때 나는 그를 인터뷰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나는 그가 일찍이 한글의 우수성 등 한국 문화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걸 잘 아는 터라 책 얘기를 웬만큼 마무리한 다음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그의 혜안을 구했다. 
그는 마치 내 질문을 예견했다는 듯 거침없이 "핀란드를 벤치마킹하라"고 했다. 당시 이미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였음에도 
역대 핀란드 왕과 대통령의 이름을 줄줄이 꿰며 그들이 어떻게 러시아와 독일을 상대로 절묘한 실리 외교를 펼쳤는지 
상세히 설명해줬다.

기왕 '예속 외교'가 아니라 '균형 외교'를 선택한 마당에 이제 우리는 철저하게 영리해져야 한다. 
때로는 관포지교(管鮑之交)보다 시도지교(市道之交)를, 견모위욕(見侮爲辱)보다 견모불욕(見侮不辱)을 
취해야 할지도 모른다. 균형 외교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