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도 이를 의식해 내년 예산을 보수적으로 편성했다고 강조한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경기가 어려워 세금이 많이 걷히지 않을 것으로 보고 수입과 지출 증가율을 당초보다 크게 낮춰 잡았다”고 설명했다. 중장기적으로 재정개혁과 구조개혁을 추진해 재정건전성을 회복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하지만 최근의 나라 살림 추이를 보면 이런 약속이 지켜질지 의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예산을 짜면서 나랏빚 규모를 ‘2018년까지 GDP의 30% 중반 수준으로 관리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불과 일 년 만에 이 숫자가 ‘2019년까지 40%대 초반’으로 바뀌었다. 국가채무에 대한 정부의 예측 능력과 관리 의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올해 평균 국가채무비율(114.6%)에 견줘 양호하다는 설명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다. 이들 국가 상당수는 미국과 일본처럼 기축통화국이거나 유로존의 보호를 받고 있다. 세계 7대 교역국이지만 통화가치가 외풍에 자주 휘둘리는 한국과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
더구나 나랏빚은 가만둬도 저절로 늘어나게 돼 있다. 고령화와 복지에 대한 수요 증가 때문이다. 내년 보건·복지·고용예산은 사상 처음으로 전체 예산의 30%를 넘어선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지출액이 내년 122조9000억원에서 2019년 140조3000억원으로 늘어난다. 빚을 내서라도 해야 하는 이런 의무지출의 비율이 높아질수록 재정건전성엔 빨간불이 켜진다.
재정건전성은 한국 경제 최후의 보루다. 넉넉한 외환보유액과 함께 외풍을 막는 방파제가 돼 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일본과 반대로 한국의 국가신용등급과 위상이 오른 것도 해외에서 이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계부채가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가운데 나랏빚마저 빠르게 늘면 경제가 기댈 안전판이 사라지는 셈이다. 청년세대를 위해 기성세대가 희생해야 한다며 노동개혁을 강조하는 정부가 미래세대의 부담인 나랏빚을 크게 늘리는 것도 모순이다.
정부는 국가채무가 정권이 아니라 국가의 문제라는 인식을 다져야 한다. 예산 낭비를 막는 재정개혁과 복지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예산 심의 과정에서 불필요하거나 시급하지 않은 지출을 걸러내는 국회의 역할도 중요하다. 내년 총선을 앞둔 국회가 모처럼 제 몫을 했다는 평가를 받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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