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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36] 밤샘

바람아님 2015. 10. 6. 09:02

(출처-조선일보 2015.10.06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사진미국 유학 첫 학기말이었다. 
학기말 리포트를 쓰느라 거의 40시간을 깨어 있었던 기억이 지금도 지난밤 악몽처럼 생생하다. 
컴퓨터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타자기에다 그것도 이른바 독수리 타법으로 수십 쪽에 달하는 
리포트를 마감일이 임박해 써야 했다. 
학생휴게실 공용 타자기 앞에 앉아 학과 사람들이 퇴근했다가 출근했다가 다시 퇴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먼동이 트던 다음 날 새벽 가까스로 끝낸 리포트를 교수 연구실 앞 상자에 넣고 
기숙사로 기어가 꼬박 하루가 넘도록 일어나지 못했다.

누구나 이런 학창 시절 무용담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밤을 꼴딱 새운 이튿날 몽롱한 상태에서 자신의 뇌 건강을 걱정해 본 기억도 있을 것이다. 
최근 노르웨이 신경과학자들이 이런 밤샘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발표했다. 
건강한 젊은 남성 21명을 23시간 동안 잠을 재우지 않고 자기공명영상(MRI)의 일종인 DTI 기법을 사용해 
뇌의 변화를 관찰했다. 아침 7:30, 저녁 9:30, 그리고 다음 날 새벽 6:30에 촬영한 검사 결과를 비교해 보았더니 
뇌 미세 구조에 상당한 변화가 나타났다. 뇌량, 뇌간, 시상을 비롯해 뇌 전반에 걸쳐 기능적 연결성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물론 이 연구는 단 한 차례 밤샘 효과를 검사한 것이라 관찰된 변화가 영구적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내 밤샘은 유학 시절 내내 이어졌다. 
그 대가로 박사 학위도 취득했고 교수도 됐겠지만 그러는 동안 내 뇌세포들이 겪었을 수난을 생각하면 적이 끔찍하다. 
하지만 이 질문은 거꾸로 뒤집을 수도 있다. 인간은 왜 잠을 자도록 진화했을까?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이 아프리카 초원을 헤매던 시절 호시탐탐 맹수들이 노리는 상황에서 잠시라도 세상 모르게 늘어지는 게 
과연 진화적으로 이득이었을까? 잡아먹힐까 두려워 잠 못 이루는 게 좋은 학점 못 받을까 걱정돼 밤새우는 것에 비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