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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코리아] 자학적 새우 콤플렉스

바람아님 2015. 11. 9. 09:45

(출처-조선일보 2015.11.09 강인선 논설위원)

외국인 눈에 한국은 강대국 사이 끼여 체념적 집단심리 깊어
美中 사이 낀 고민은 관련국들 공통 문제
美, 反中연대 동원 느낌 들지 않게 배려해야

강인선 논설위원외국인들 눈에 비친 한국은 덩치가 돌고래쯤 되는데도 여전히 새우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나라이다. 
강대국 사이에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경험을 반복하다 생긴 체념적 집단 심리라고 할까.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여름 읽은 책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저자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새우 콤플렉스의 핵심은 "주변 강대국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는 약소국 지위를 염두에 둔 채 
항상 조심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는 자학적 공포심"이라고 했다.

영국 기자 대니얼 튜더도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란 책에서 
"오랜 세월 강대국들의 교두보나 전략적 자산으로 취급되어온 탓에, 
한국에는 '우리 편 아니면 저쪽 편'이라는 시각에 기반한 민족주의가 발달해 있다"고 했다.

정말 한국 특유의 자학적인 새우 콤플렉스가 있는 것일까. 
한국의 지정학적 운명은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모진 것일까. 
요즘 지구 상에서 가장 뜨거운 바다인 남중국해를 보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중국은 이 해역의 거의 대부분이 중국 바다라는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
미국은 남중국해에서 항해와 비행의 자유를 명분으로 이를 저지하려 한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영해 분쟁 관련 이슈는 다자 무대에 올리지 않고 양자 해결을 하겠다고 한다. 
이 같은 입장을 지지해달라며 주변국을 압박하기도 한다. 
혼자 중국을 상대하기에 힘이 부치는 나라들은 함께 모여서 미국과 연대해 대응하고 있다. 
문제는 중국이 여전히 이들에게 이웃이자 중요한 교역 상대국이라는 점이다. 
국익에 기반한 원칙을 고수하는데도 미·중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이런 사정 때문이다.

싱가포르가 특히 강한 압박을 받았다. 싱가포르에 중국은 셋째로 큰 교역국이다. 
게다가 인구 대다수가 중국계라 중국으로부터 '작은 중국' 취급을 받기도 한다. 
2010년 베트남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남중국해 문제에 본격 개입하는 
연설을 했을 때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은 반박 연설을 하면서 싱가포르 외교장관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리고 "중국은 큰 나라이고 다른 나라들은 작다. 그게 팩트(사실)다"라고 했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이 같은 압력을 거부하고 아세안 국가들과 함께 자유 항행 원칙을 고수했다.

인도는 미·중 관계가 복잡해지면서 몸값이 올라갔다. 
'중국 견제'라는 점에서 마음이 맞아 미국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래도 미국의 변심 가능성을 늘 우려한다. 
중국에 대해 '포용'과 '견제'라는 두 개의 깃발을 든 미국이 언제 중국에 더 밀착해 인도에 차가워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요즘 국제정치가 불안정해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미·중 관계가 정립되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냉전시대 미·소 대결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19세기 말 군비경쟁을 하던 영·독 관계처럼 보이는가 하면, 
2차대전을 전후해 권력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던 시절을 떠올리게도 한다. 
미·중 관계가 안정되지 않으니 그 사이에 낀 나라들은 새우 콤플렉스가 없다 해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남중국해에서의 자유 비행과 항해가 국익에 부합하는데 미국과 보조를 같이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미국은 미·중 사이에서 압력을 느끼는 국가들 대부분이 중국의 경제· 군사적 압력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중국의 억지 주장을 견제하려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그럴수록 관련국들이 미·중 두 강대국 대결에서 반중(反中) 연대에 
동원되는 듯한 느낌은 갖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요구받는 듯한 부담이 느껴지는 건 고질적인 새우 콤플렉스 때문이 아니라 
미국 외교의 비전이 정교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