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2015-11-11
배연국 논설위원
신라와 함께 백제를 무너뜨린 소정방이 당나라로 금의환향했다. 당 고종을 알현한 소정방은 득의양양한 모습이었다. “백제가 마침내 폐하의 영토가 되었나이다.” 그러자 황제가 마뜩잖은 표정으로 물었다. “신라는?” 내친김에 왜 신라까지 정벌하지 않았느냐는 핀잔이었다.
사실 고종은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를 중국 땅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의 야욕은 착착 행동으로 옮겨졌다.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를 둔 당나라는 668년 고구려가 멸망하자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해 통치하기 시작했다. 당의 속셈을 간파한 신라는 고구려 유민과 힘을 합쳐 싸웠다. 당의 대군을 요동으로 몰아내고 통일대업을 완성하기까지는 다시 8년의 시간이 걸렸다. 수많은 신라 청년들이 전장에서 피를 뿌려야 했음은 물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급변사태를 맞는다면 수뇌부는 중국에 SOS를 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두 말 없이 파병할 것이다. 북한 내 자국의 투자시설을 보호하고 남쪽의 미군을 견제한다는 실리적 목적도 있다. 그때 우리 청년들이 신라 병사들처럼 중국과 과연 맞서 싸울 수 있을까.
통일에 대한 북한 주민의 생각도 우리가 판단하는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북한 관련 단체에서 2009년 북한 접경지역 주민 1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북한 붕괴 시 중국과의 통합을 바라는 사람이 40.1%에 달했다고 한다. 남한과의 통일을 꼽은 27.1%보다 훨씬 많았다. 비교적 남한 사정에 밝은 접경지 주민의 인식이 이럴 정도다. 그런 사람들이 옛날 고구려 유민처럼 우리 편에 서서 통일에 협력할 것이라는 생각은 순진한 환상일지 모른다. 남한에 대한 이들의 거부감을 없애지 않는 한 자칫 ‘닭 쫓던 개’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의 자세는 더 문제다. 기성세대, 젊은 세대 할 것 없이 통일의 당위성을 인정하면서도 대다수가 부담은 지려 하지 않는다. 그런 판국에 목숨이 걸린 통일전쟁은 언감생심이다. 남북 당국 간의 실질적인 교류는 오래전에 끊어졌다. 천안함 폭침과 같은 도발이 직접 원인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남북통일의 지상과제를 생각한다면 그것이 최상일 수는 없다. 북한 정권과 주민의 중국 경도현상이 통일에 대형 암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과의 단절이 계속되는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인내심을 갖고 대화의 통로를 뚫어야 한다. 우선 북한에서 가장 절실한 식량문제에서부터 물꼬를 틀 필요가 있다. 최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발표에 따르면 북한은 극심한 가뭄 여파로 내년에 120만t의 식량이 부족할 것이라고 한다. 반면 우리 쪽은 창고에 비축된 쌀 재고량이 현재 136만t에 이른다. 보관비용만 연간 1760억원이다. 올해 대풍으로 재고량은 더 늘 수밖에 없는 처지다. 과잉재고의 출구전략으로 대북 지원을 고려할 때가 됐다고 본다. 과거와 같은 퍼주기 식 지원을 하자는 게 아니다. 파격적인 조건으로 지원하되, 지하자원 등과 맞교환하는 유상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끌어내기만 한다면 중국 경도현상과 통일비용이란 두 개의 뇌관을 일단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통일은 도둑처럼 몰래 올 수 있다. 하지만 아무 대비 없이 도둑을 들이면 집안은 거덜 나게 마련이다. 준비 없는 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쪽박이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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