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탄아트마인 레일바이뮤지엄석탄가루가 수북이 쌓인 광차 궤도 위에 붉은 꽃이 피고 있다. 검은 땅 위에 피는 문화예술의 꽃이다. |
곡괭이질 멈춘 폐광산에 꽃이 피고 있다. 광부들이 지옥의 문이라 부르던 수직갱 입구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화장실, 목욕탕, 탈의실은 박물관과 미술관이 됐다. 흉물스럽게 버려진 폐광시설을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강원 정선의 광산 이야기다.
동원탄좌 석탄역사체험관 세화장 입구에 광부들의 모자가 걸려 있다. |
1948년 채탄을 시작한 사북동원탄좌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민영 석탄회사였다. 광부들의 사북항쟁, 3·3투쟁 등 석탄산업의 굵직한 역사도 동원탄좌가 있는 사북읍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동원탄좌가 사라지면 56년 사북의 역사도 사라집니다.”
삼탄아트마인 세탁실. 광부복 세탁기에서 걸어 나오는 형상의 작업복이 걸려 있다. |
석탄유물보존회 전주익 기획팀장이 동원탄좌 석탄역사체험관에 대한 사연을 풀어놨다. 동네에 카지노가 들어서자 주민들도 리조트 사업에 관심을 쏟았다. 이제 검은 가루 날리는 탄광은 없애버리자고 했다. 하지만 탄광시설이 사라지면 치열했던 광부들의 삶이 잊혀질 것이라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려 왔다. 퇴역 광부들은 석탄유물보존회를 구성했다. 석탄산업 시설들을 지키기로 뜻을 모았다.
“흘러간 모든 것들이 유물이 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광부의 목욕탕에 샤워하는 비너스상이 전시된 삼탄아트마인 갤러리. |
보존회는 자신들이 쓰던 장비들을 정리했다. 생명을 지켜주던 안전모, 방진마스크, 장화를 비롯해 광부신분증과 월급명세서 등 사소한 흔적들도 전시했다. 목욕탕, 세화장, 탈의실은 폐광 직전 모습 그대로다. 세탁실 칠판에는 ‘송별회’ ‘마지막 세탁’ 등 폐광을 앞둔 2004년 10월의 행사 기록이 남아 있다. 재미를 더하기 위해 광부들이 타던 인차를 이용해 갱도에 들어가는 체험행사도 마련했다.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동원탄좌 석탄역사체험관동원탄좌 석탄역사체험관 뒤로 수십년 동안 캐낸 폐 석 이 쌓여 검은 야산이 됐다. |
사북 이웃동네 고한읍의 삼척탄좌 폐탄광은 예술공간으로 탈바꿈했다. 2013년 문을 연 ‘삼탄아트마인’은 ‘삼척탄좌(삼탄) 폐탄광 시설에서 예술(아트)을 캐내는 광산(마인)’을 의미한다. 고 김민석 대표가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10만여점의 예술품이 전시됐다.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을 마련하고 현대 미술관도 꾸렸다. 2억년 세월을 캐던 광부들의 목욕탕과 화장실은 광산갤러리가 됐다.
“2억년이 지나야 석탄이 만들어진단다.”
광부 아내의 웨딩드레스가 걸려 있는 삼탄아트마인 갤러리. |
책에서나 볼 수 있는 탄광시설을 둘러보는 아이들의 눈이 초롱초롱했다. 탄가루 덕지덕지 붙은 장화를 씻던 세화장에 하얀 웨딩드레스가 걸려 있다. 광부들에게 시집가는 새색시들이 궁색한 살림살이 때문에 공용으로 돌려 입던 웨딩드레스다. 하얀 눈을 껌뻑이며 검둥이가 된 광부들이 씻던 목욕탕에는 비너스 조각상이 설치됐다. 거품에서 탄생했다고 전해지는 아름다운 여신이 광부들과 함께 목욕하고 있다.
광부들은 광산을 떠났지만 검은 흔적들은 지워지지 않았다. 탄가루 수북이 쌓인 광차 궤도 위에 빨간 꽃이 피고 있다. 검은 땅에 피는 문화 예술의 꽃이다. 1988년 347개에 달했던 전국의 탄광은 이제 5개만 남아 있다.
<정선 | 사진·글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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