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합의인 데다, 합의 과정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당사자에 대한 이해를 구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문제도 피해가면서 반발 여론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깜깜이 협상 해놓고 “이해하시라”는 정부…앞뒤가 틀렸다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소녀상 이전 문제도 쟁점이다. 일본 측은 소녀상 이전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고,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가능한 대응 방향에 대해 관련단체와 협의해서 적절히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한일 위안부 협정이 타결된 다음날인 29일 서울 일본대사관 건너편 소녀상에 시민들이 가져온 모자, 목도리, 핫팩 등이 놓여있다. 이준헌 기자 |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은 30일 정부가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위안부 소녀상을 이전하는 것을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 지원 재단에 10억엔을 내는 것의 전제 조건으로 했다고 보도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도 28일 회담을 마친 뒤 일본 기자들과의 비공개 간담회에서 “(일본이) 잃은 것은 10억엔뿐”이라고 말한바 있다.▶“위안부상 이전이 10억엔 지출의 전제 조건”...일본 언론들 보도한국 정부는 소녀상 이전에 합의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소녀상 이전이 10억엔 지원의 전제조건이라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사실로 드러나는 경우 반발 여론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함의안 이행을 위한 후속 작업에 착수하면서 이번 합의안이 논점을 벗어나 자칫 소녀상 이전을 둘러싼 양국의 감정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온다. 28일 한·일 외교장관회담 결과를 담은 합의문에는 소녀상 철거가 명시되지 않았다. 다만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한국 정부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대해 일본 정부가 공관의 안녕·위엄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한다”며 “가능한 대응 방향에 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를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이 힘없는 젊은 여성의 인권을 유린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인 소녀상에 대한 시민들의 애정은 각별하다. 최근 기온이 떨어지자 소녀상에 목도리를 둘러주는 시민도 등장했다. 향후 12·28 합의 이행 과정에서 쟁점이 될 소녀상을 되돌아 봤다.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소녀상’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 연합뉴스 |
130cm 치마저고리를 입은 짧은 단발머리 소녀, 손을 잔뜩 움켜진 채 일본대사관을 응시하고 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소녀의 발은 맨발.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건너편에 세워진 위안부 소녀상(평화의 소녀상)의 모습이다. 일본이 전쟁 중 반인륜 범죄를 저질렀고, 특히 힘없는 젊은 여성의 인권을 유린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소녀상의 단발머리는 일제강점기 당시 댕기머리를 하고 있던 한국 여성의 머리스타일은 아니다. 일본군이 댕기머리였던 위안부들의 머리를 강제로 잘라낸 것을 표현했다. 머리카락은 단발인데 자세히 보면 거칠게 뜯겨진 모습이다. 맨발의 소녀는 일본군 위안부들의 고단하고 처참했던 생활을 보여준다. 실제로 위안부들을 찍은 당시 사진에는 신발을 신은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다.
두 손을 쥐고 있는 소녀상. | 이준헌 기자 |
소녀상은 2011년 12월14일 주한대사관 앞 건너편에 건립됐다. 수요집회 1000번째를 맞이한 날을 기념하고, 일본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이어온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염원하기 위해서 세워졌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이 계획했고, 김운성·김서경 부부 작가가 소녀상을 공동 작업했다. 표지석에는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가 직접 쓴 문구가 새겨져 있다. “1992년 1월8일부터 이곳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2011년 12월14일 1000번째를 맞이함에 그 숭고한 정신과 역사를 잇고자 이 평화비를 세우다”라는 문구가 한국어와, 영어, 일본어 등 3개 국어로 새겨져 있다.
김운성·김서경 부부는 2014년 영남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소녀가 한복을 입은 모습은 조선을 상징하고, 왼쪽 어깨에 앉아 있는 새는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상징물이다. 빈 의자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의자다. 수요집회 때 강제위안부 할머니가 앉는 자리다. 그러면서 우리가 앉아 공감하는 자리이고 우리와 다음세대가 풀어가야 할 자리다.”라고 밝혔다.
12월30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추모회가 열린 주한 일본대사관앞에 서있는 소녀상 발에 한 시민이 목도리를 감아놓았다. | 김정근 기자 |
지금도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과거사 사과와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집회가 열린다. 소녀상이 세워진 후 시민들은 날씨가 추워지면 목도리를 둘러주고, 시린 발을 핫팩으로 감싸주었다. 소녀상 옆 작은 의자에 꽃다발을 갖다 놓기도 했다.
소녀상은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을 비롯하여 경기 고양시 호수공원, 성남시청 공원, 수원올림픽공원 등 전국 각지에 세워졌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과 미시건주 디트로이트시 등에도 일본의 인권 유린을 알리는 위안부 소녀상이 세워졌다. 중국과 호주에서도 위안부 소녀상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2013년3월20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이 노란 우비를 입고 있다. | 김창길 기자 |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2013년 1월2일 열린 ‘일본군 종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장의 소녀상에 한복이 입혀져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
전국 곳곳에 한파경보가 발령된 2011년 11월26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앞에 세워진 평화비 소녀상에 털모자, 목도리, 담요 등이 덮혀 있다. | 김창길 기자 |
■‘소녀상은 불법 시설’
그동안 일본은 위안부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채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 철거를 요구해 왔다. 일본 우익들은 미국 지방정부에서 일본군 주둔지역에 끌려간 조선 군위안부의 실상을 적어 세운 기림비 철거 서명운동도 하고 있다. 백악관 청원 사이트 ‘위 더 피플(We the People)’에 올라온 청원 중에는 위안부 소녀상·기림비 철거를 요청하는 일본 누리꾼들의 청원도 상당수다.
‘소녀상은 불법 시설물’이라는 이유로 철거를 주장하는 일부 일본 우익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소녀상이 자리한 일본대사관 건너편 도로는 국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 소관이다. 소녀상은 해당 지자체인 종로구 허가를 받아 설치됐다.
2012년 6월 한 일본 극우 정치인은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에 ‘말뚝테러’를 가하기도 했다. 일본 극우단체 회원인 스즈키 노부유키는 당시 위안부 소녀상에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라고 적은 말뚝을 묶어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그는 일본 가나자와시 윤봉길 의사 순국비와 서울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등에도 같은 테러를 저질렀다.▶‘위안부 소녀상 테러’ 일본인 불구속 기소
일본 우익 정치인 스즈키 노부유키가 지난 5월19일 경기 광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보금자리 나눔의 집에 보낸 성매매 여성을 상징하는 ‘제5종보급품’ 글자가 적힌 일그러진 소녀상과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글자가 적힌 작은 말뚝. | 연합뉴스 |
같은해 10월 미국 뉴욕총영사관과 뉴저지주 위안부 기림비에서 독도가 일본 영토임을 주장하는 말뚝과 스티커가 잇따라 발견됐다. 뉴욕총영사관은 2년 10월27일(현지시간) 맨해튼 민원실 현판 밑에 ‘다케시마(竹島)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적힌 흰색 푯말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현판 밑에서는 전날에도 ‘독도는 일본 땅(日本國竹島)’이라고 쓰인 가로, 세로 각 5㎝짜리 스티커가 발견됐다.
<이명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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