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양상훈 칼럼] 大邱서 제동 걸고 光州선 깨버리길

바람아님 2016. 4. 7. 09:36

(출처-조선일보 2016.04.07 양상훈 논설주간)

대구 폭력 공천 성공하면 독선 對 반감으로 국정 마비… 이 흐름 막을 곳은 대구뿐
제3당 광주 석권이면 사건… 지역·운동권 안주 야당 생리 제3당이 광주서 깨버리길

양상훈 논설주간친박 측이 대구 유세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 선거 걱정 때문에 밤잠을 못 이루실 것 같다"고 했다. 
지금 여론조사로는 대구 지역구 12곳 중 새누리당 후보가 우세한 곳이 절반에 불과하다. 
박 대통령이 내쫓은 사람들이 무소속으로 나와 당선되면 큰일이니 잠이 오지 않을 거란 얘기다. 
이 기사에 대한 인터넷 댓글을 보니 '자업자득'이란 반응이 가장 많은 듯했다. 
'친박은 국민 걱정은 안 하고 대통령 걱정만 하느냐' 
'대통령이 나라 걱정 안 하고 대구 선거 걱정하느냐'는 등의 내용도 눈에 띄었다.

박 대통령은 대구 유권자들의 지지가 훨씬 높은 사람들을 마음에 안 든다고 경선 기회도 주지 않고 
잘라버렸다. 이것은 '내가 찍으라면 군말 말고 찍어!'와 같은 폭력적 행태다. 
아무리 대구 유권자라고 해도 여기에는 반발심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건 좀 너무하지 않으냐'는 게 지금의 대구 민심일 것이다.

그러나 대구 선거 결과가 지금 여론조사대로 나올지는 알 수 없다. 
서울에 사는 대구 사람 중엔 '그래도 결국엔 1번을 찍어주지 않겠느냐'고 예측하는 분이 조금 더 많은 듯했다. 
필자도 51대49로 그쪽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다만 그 결과가 무엇일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이번 공천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듯 청와대는 정치 문제에 관한 한 박 대통령에게 찬반 의견이 올라가서 하나로 수렴되는 
구조가 전혀 아니다. 오로지 상명하달밖에 없고 부작용이 명백히 예견돼도 "아닙니다"라고 말할 참모는 단 한 명도 없다. 
이 상황에서 박 대통령에게 경종을 울려줄 수 있는 사람들은 대구 유권자뿐이다. 
대구 시민들이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으냐'는 투표를 하면 박 대통령은 이번에도 승부수가 통했다고 믿을 것이다. 
'누가 뭐래도 결국 내가 옳다'는 독선, 오만, 오기는 더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박 대통령과 친박은 총선 후 다음 대통령 만들기에 나설 것이다. 
대통령이 국가원수가 아니라 일개 정파의 수장으로 권력 정치에 뛰어들면 집권당은 악에 받친 계파 전쟁터가 되고 
국정은 마비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다른 누구보다 박 대통령 스스로에게 최악의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미 서울에 출마한 여당 후보 47명 전원과 심지어 진박이라는 사람까지 선거 공보물 전면에서 박 대통령을 뺐다고 한다. 
서울의 여당 후보들은 박 대통령에 대한 실망, 염증으로 "이번엔 투표하지 않겠다"는 지지자들 때문에 긴장하고 있다.

실제 선거에선 새누리당이 야당 분열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수도권에서 예상외로 선전하고 다수 의석을 얻을 기회가 
여전히 있다. 그렇다 해도 대통령을 향한 이 광범위한 반감은 앞으로 국정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보수적 성향의 원로 중에 "박정희의 근대화 위업까지 빛이 바랠 수 있다"고 개탄하는 분이 적지 않다. 
이 흐름에 제동을 걸어 궁극적으로 박 대통령을 계파 수장에서 국가원수로 끌어올릴 곳은 대구밖에 없다. 
한국 정치에서 새누리당 공천 파동과 같은 악습에 종지부를 찍는 정치 발전도 대구에서 시작될 수 있다.

광주에서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더불어민주당을 압도하면서 싹쓸이할 기세라는 것도 크게 주목한다. 
지역 정서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라 해도 운동권 정당인 더민주가 광주에서 밀려난다는 상징성은 무시할 수 없다.
호남에서도 선거 때마다 나오는 '90% 몰표'에 대해 자괴감을 느끼는 분이 적지 않다고 한다. 
아직은 '여당과 그만 싸우라'는 사람보다는 '더 싸우라'는 사람이 많지만 '운동권식으로는 정권 교체도, 
지역 발전도 안 된다'고 자각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표가 호남에 지원 유세도 못 하는 것은 
친노 패권에 대한 지역적 반감만이 아니라 호남 유권자들의 야당관(觀) 변화도 일부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선거 후 국민의당이 호남 제1당이자 원내 교섭단체로 등장한 후 운동권 아류의 행태를 보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구성원 면면을 보면 그럴 소지가 있다. 하지만 여야 양당의 적대적 공생(共生) 구태를 깨겠다는 슬로건으로 표를 얻은 당이고, 
안 대표도 더민주의 운동권 체질에 몸서리를 친 사람이니 무언가 다를 것이다.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더민주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사건은 지역주의를 업고 주민들과 관계도 없는 운동권 정치를 해온 
한국 야당의 낡은 생존 방식에 일대 충격이 된다. 제3당이 던지는 이 폭탄이 다른 곳도 아닌 광주에서 터지면 
이것이 야당의 생리를 바꾸고 우리의 살벌한 정쟁(政爭)을 조금씩이라도 순화시키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우리도 미국 민주·공화 수준의 '관리되는 갈등'으로 민주정치, 의회정치를 해나갈 수 있는 싹을 광주의 제3당 혁명이 
틔워주기를 바란다. 
국민이 한번 회초리를 들 때가 됐다. 
지금 그 회초리는 대구와 광주 시민들에게 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