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6-04-11 03:00:00
부형권 뉴욕 특파원
미국은 한국보다 여성 인권이나 남녀평등에서 앞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보다 못하거나 뒤처진 부분이 적잖이 눈에 띈다. 5일(현지 시간)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시의회는 6주 유급 출산휴가를 보장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미 언론은 “출산휴가 기간 급여 전액을 보전해 주는 건 처음”이라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선진국 중 미국만 (법률로 보장된) 유급 출산휴가가 없다”고 자탄했다. 한국의 유급 출산휴가는 샌프란시스코 6주의 2배가 넘는 90일이다. 쌍둥이 등 다태아인 경우엔 120일이다. 부모 모두 근로자면 각자 최대 1년까지 사용할 수 있는 육아휴직 제도도 있다. 이 기간에도 통상임금의 40%를 받는다. 임신부를 위한 하루 2시간 업무시간 단축제, 출산 근로자를 위한 1일 1시간 육아(모유수유)시간 보장 제도도 있다.
양성평등의 상징성 측면에서도 한국이 앞서는 부분이 있다. 한국은 2009년 최고액인 5만 원권 모델로 신사임당을 선택했다. 당시 한국은행은 “양성평등 의식을 제고하고 여성의 사회 참여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선 여성 참정권 보장 100주년인 2020년에야 10달러짜리 지폐에 최초로 여성이 등장할 예정이다. 첫 여성 대통령 배출도 한국이 2012년 18대 대선에서 먼저 이뤘다. 미국에선 올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45대 대통령이자 첫 여성 대통령에 도전하고 있지만 녹록한 상황은 아니다.
미국엔 없는 육아휴직, 고액권 지폐 여성 모델, 여성 대통령까지 한국엔 다 있으니 한국 여성이 미국 여성보다 더 평등한 삶을 누리고 있는 걸까. 두 나라에서 다 살아본 여성들의 대답은 대체로 그렇지 않았다.
“양성평등 관련 제도는 한국이 미국보다 앞서 있다. 그러나 인식과 문화는 아직 멀었다. 일하는 엄마로서 미국 직장생활이 더 좋다. 특히 마음이 편하다.”(미국으로 이민 간 40대 전문직 한국 여성)
“한국인 남편은 착한 사람이다. 하지만 육아와 가사는 여자 몫이라고 생각한다. 맞벌이인 내가 참고 참다가 ‘일은 똑같이 하는데 왜 아이는 나 혼자 키우나’라고 비명을 질렀다.”(한국으로 시집간 30대 미국인 여성)
“미국에서 학교 다닐 땐 스포츠클럽 활동에서 남녀 차별이 없었다. 남자 야구팀이 있으면 여자 소프트볼팀이 있다. 한국에선 ‘여학생이어서 할 수 없는 일’이 적지 않았다.”(양국의 중고교를 모두 다녀본 미국 대학의 한국인 여학생)
양성평등은 몇몇 제도나 상징만으로 성취되지 않고 국가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전방위적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항변이었다.
유엔은 올해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을 맞아 ‘2030년까지 50 대 50의 지구를 만들자’고 선언했다. 이 구호대로 진정한 양성평등을 먼저 구현하는 나라들이 21세기를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지난해 취임하면서 공약대로 남녀 동수(15 대 15) 내각을 출범시켰다. 그 이유에 대한 대답은 회자(膾炙)된다. “지금은 2015년이니까요.”
이틀 뒤 한국은 총선이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여야 의석수 못지않게 남녀 의석수의 변화도 관심 있게 지켜볼 것이다. 올해는 2016년이다.
부형권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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