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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400주기]햄릿과 돈키호테의 두 작가, 동시죽음 미스터리

바람아님 2016. 4. 25. 00:10
아시아경제 2016.04.23. 07:00 

"1616년 타계한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 둘다 무덤이 수상한데.."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다. 이 가혹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참고 견뎌내는 것이 고상한 일인가, 아니면 거센 바다에 맞서서 무기를 집어 들고 덤벼드는 게 옳은 일인가." 영국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다. 셰익스피어는 이 명문장을 남겼지만 정작 본인의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23일은 셰익스피어가 세상을 떠난 지 400년이 되는 날이다. 그는 1616년 4월 23일 52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의문투성이인 그의 생애처럼 죽음의 원인도 알려지지 않았다. 셰익스피어의 삶과 죽음에 대한 호기심은 '진위 논란'과 맞닿아 있다. 셰익스피어가 당대 다른 이의 필명이었다는 의혹이나 한 사람이 아닌 전문가 집단을 지칭한다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의 고향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의 성 트리니티 교회에 있는 무덤을 파보고 싶어 했다.


왼쪽부터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
왼쪽부터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

하지만 그의 묘비를 보면 그런 호기심이 쏙 들어간다. 셰익스피어가 남긴 것으로 알려진 묘비명에는 "벗이여, 원하건대 여기 묻힌 것을 파지 말아다오, 이 묘석을 그대로 두는 자는 축복을 받고 나의 뼈를 옮기는 자는 저주 받을지어다"라고 적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 무덤 속을 확인하면서도 저주를 피하는 연구가 진행됐다. 서거 400주기를 맞아 그의 무덤을 레이더로 투사한 것이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지하투과레이더(GPR)로 셰익스피어의 무덤을 처음 조사한 연구팀은 그의 두개골이 사라졌다고 발표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연구팀을 이끈 케빈 콜스는 "머리 부분에서 매우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며 "안에 있던 것이 파헤쳐지고 다시 집어넣은 증거로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1879년 미국 잡지 '아거시'도 셰익스피어의 두개골이 1794년 묘지에서 도굴 당했다고 보도했다고 한다. 하지만 교회 측은 그의 두개골이 사라졌다고 결론 내릴 충분한 증거는 없다는 입장이다.


흥미로운 것은 셰익스피어와 같은 날 세상을 떠난 '돈키호테'의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무덤에 관해서도 석연치 않은 얘기들이 전해졌다는 점이다. 세르반테스는 말년에 신앙생활에 전념하며 수도원에 들어가 살았다. '돈키호테' 2부를 쓴 곳도 수도원이라고 한다. 그는 돈키호테가 완간된 이듬해인 1616년 수종증이 악화돼 69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세르반테스가 묻히고 싶었던 곳은 스페인 마드리드의 삼위일체 탁발수녀원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그의 무덤은 수녀원이 확장되고 수차례 재건축되면서 잊혀졌다. 그러다가 지난해 세르반테스의 유골을 발견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발굴팀이 수녀원 지하에서 'MC'라고 적힌 관을 찾았는데 MC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의 첫 글자라는 것이다. 일그러진 왼팔 뼈와 총알에 손상된 가슴뼈, 치아 등도 있었다. 세르반테스는 레판토 해전에서 총을 맞았으며 이 때문에 왼팔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이 유골도 진위 논란에 휩싸였다. 추정일 뿐 DNA 검사로 100% 세르반테스의 유골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지하 납골당에 뒤섞인 유골들 중에 한 조각이 세르반테스의 것일 가능성만을 가지고 떠들썩하게 발표를 하는 것은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셰익스피어의 고향처럼 수녀원을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생각 때문 아니냐는 의심도 샀다. 무덤도 죽음도 명쾌하지는 않지만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남긴 유산은 분명하다. 유네스코는 두 대문호가 서거한 이날을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김철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