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6.05.06)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가 4일 CNN 인터뷰에서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이 방위비를
100% 부담해야 한다고 다시 말했다.
'한국은 주한미군 인적 비용의 50% 정도를 부담한다'는 질문에 트럼프는 "100% 부담은 왜 안 되느냐"고 반문했다.
트럼프는 "한국이 미치광이(maniac)가 있는 북한에 맞서 스스로 방어해야 한다면, 그들이 우리를 제대로 존중하지
않는다면, 대답은 간단하다. 스스로 방어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는 뜻이다.
3일 인디애나주 경선에서 트럼프가 압승한 직후 테드 크루즈 전 상원 의원이 경선 중단을 선언했고
4일엔 마지막 경쟁자 존 케이식 오하이오주 주지사까지 하차하면서 공화당 경선은 막을 내렸다.
미국 주류 사회는 충격과 분노, 한탄 속에 트럼프의 후보 확정을 받아들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주요 정당이 내놓은 후보 중 가장 논란이 많고 준비가 덜 된 후보"라고 했고,
한 선거 분석가는 "160년 공화당의 자살"이라고까지 했다.
트럼프의 언행을 보면 이런 평가를 지나치다고 할 수 없다.
최근 미국 여론조사는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 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의 우세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공화당 레이건·부시의 12년 연속 집권 사례를 제외하면 미국에선 2차 대전 이후 민주·공화 양당이 최장 8년 주기로
정권을 교체해왔다. 트럼프 당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로선 미 대통령 트럼프와 마주 앉게 될 상황에 대비해야만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확히 말하면 트럼프에겐 안보 전략이 없다. 모든 것을 '돈'으로 따질 뿐이다.
한국이 돈을 더 내지 않으면 "한반도에 전쟁이 나도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서방 세계의 중심축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대해서도 방위비와 역할 분담을 재조정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그 돈을 미국인을 위해 쓰겠다고 말해 환심을 샀다.
물론 트럼프의 말은 당치 않다.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은 의회 청문회에서 "동일 규모 군대가 미국에 주둔하는 것이 한국에 주둔하는 것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드느냐"는 질문에 "절대적으로 그렇다"고 했다. 당연한 얘기다.
트럼프의 주장은 유권자들을 잠시 속이는 것이다.
"주한미군 가치는 비용을 능가한다"는 한 전문가의 말처럼 해외 기지로 득을 보고 있는 것은 일차적으로 미국이다.
트럼프가 한국을 향해 핵무장 하라고 하지 않아도 미국의 일방통행으로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한·미 동맹이 깨진다면
우리는 핵무장을 급박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다. 다만 세계 핵 참화를 그나마 막아온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가
무너지면 핵무기가 이슬람국가(IS) 등 극단주의 테러 단체 손에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 최대 피해국은 미국이다.
그래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 해도 상식 밖 주장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미국은 대통령중심제이지만 대통령 한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전문적이고 방대한 행정부 조직이 있고 대통령을 견제하는 의회가 있다.
피를 바쳐 미국 역사를 만들어온 군인들도 있다.
그들이 트럼프가 미국을 해치는 것을 마냥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정작 이번 미국 대선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트럼프가 아니라
이런 사람을 대통령 후보로 만든 미국과 미국인들의 달라진 모습이다.
지금까지 많은 보통 미국인은 복잡한 세계 문제를 이해하지는 못했더라도 미국의 역할과 부담을 묵묵히 견뎌왔다.
그런 그들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특히 중산층 이하인 백인 남성 계층이 금기를 깨며 좌충우돌하는 트럼프에 열광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트럼프가 막말을 하고 이치에 닿지 않는 주장을 해도 이들 분노한 유권자는 "미국인들 이익을 최우선하겠다"는
그에게 변함없는 지지를 보냈다.
공화당만이 아니다.
민주당에서 경선 완주를 다짐한 샌더스 상원 의원 역시 이런 미국인들의 분노를 대변하고 있다.
이번에 트럼프와 샌더스가 실패해도 제2, 제3의 트럼프, 샌더스가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와 샌더스 모두 미국이 맺은 각종 자유무역협정(FTA)이 미국인에게 피해만을 입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극단적 주장이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트럼프는 FTA를 "완벽하고 총체적인 재앙"이라며 무효화시킬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든 안 되든 다음 대통령 시대에 세계 무역협정은 상당한 시련기를 맞을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지금처럼 정치·경제적으로 양극화된 시기는 없었다고 진단한다.
미국의 행로를 예측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졌다.
정부와 군은 물론이고 기업과 학계·연구소 모두가 미국과 미국인들의 변화를 주의 깊게 살피면서
대화하고 설득할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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