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사설]시민은 살아남기도 힘겨운데 국회는 개헌이 우선인가

바람아님 2016. 6. 17. 05:44
경향신문 2016.06.15. 20:50

20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개헌론이 봇물 터지듯 확산되고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개원식에서 “내년이면 ‘1987년 체제’의 산물인 현행 헌법이 제정된 지 30년이 된다. 개헌은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밝히면서다. 어제는 ‘개헌 전도사’로 알려진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 내정자가 “내년 초에, 늦어도 내년 4월 보궐선거 즈음에 (개헌안) 국민투표를 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라며 시기까지 거론했다. 권력구조 개편 방향으로는 독일·오스트리아식 분권형 내각제를 언급했다. 새누리당 대선주자로 거명되는 남경필 경기지사도 “지금과 같은 정치구조로 가선 안된다”며 개헌론에 힘을 실었다. 앞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도 “개헌은 해야 한다. 한번 시도해볼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밝힌 바 있다.

1987년 체제는 물론 완벽하지 않다. 한 세대가 바뀌는 사이 사회·경제적 환경이 크게 달라졌다. 생명·안전·환경권 등 시민의 기본권 강화가 절실해졌다. 그러나 대선을 1년6개월 앞두고 제기되는 개헌론이 어디로 흐를지 짐작 못할 이는 없다. 논의의 초점이 돼야 할 기본권 강화는 뒷전으로 밀리고 권력구조 개편에 집중될 게 분명하다. 권력을, 누가 어떻게, 얼마나 쥘 것이냐를 둘러싸고 각 정치세력 간 이전투구가 벌어질 것이다.


설사 권력구조 개편이 필요하다 쳐도 작금의 논의는 잘못됐다. 대통령제는 무조건 ‘제왕적’이고 내각제·이원집정부제는 무조건 ‘분권적’인가. 대통령제를 택하고도 민주적 협치를 실현한 나라들이 많다. 반면 내각제·이원집정부제로도 독재를 막지 못한 나라가 있다. 터키의 경우 다수당 대표가 총리를 맡는 내각제와 직선 대통령이 각의 주재권을 갖는 준대통령제가 섞여 있다. 그럼에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독주는 갈수록 심화되는 상황이다. 권력 독점이 문제라면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를 개편하고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는 게 답이다. 국민투표까지 갈 것도 없이 국회 차원에서 가능한 과제다.


여야는 말 따로, 행동 따로다. 민생 현안이 시급하다더니 개원하자마자 개헌 타령이나 하고 있다. 지금 서울 강남역과 구의역, 경기 남양주, 경남 거제에서 시민이 죽어가고 있다. ‘우연히’ 살아남은 사람들도 먹고살기 어려워 고통받고 있다. 권력구조를 바꾼다고 달라질 게 뭔가. 현 정권의 집권 연장이나 이른바 지역 맹주들의 정치생명 보호 외에 무슨 명분이 있나. 개헌론은 시기도 내용도 적절치 않다. 국회는 당장 개헌론을 접고,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고 부축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