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6-06-14 03:00:00
신원건 사진부 차장
우리나라라고 다를까. 지난해 7월 황교안 국무총리가 조리실 위생상태를 점검하려고 서울 구로노인종합복지관을 찾은 일이 있다. ‘식중독 예방’이라는 좋은 의도였다. 문제는 총리가 타야 한다는 이유로 엘리베이터를 잡아 놓는 바람에 정작 이 시설을 이용하는 노인들은 계단으로 오르락내리락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한 통신사 사진기자가 인터넷에 올려 알려졌다.
시장 같은 삶의 현장을 방문할 때 의전이나 경호 문제가 상인들의 불만을 산다는 것은 정치인들도 잘 안다. 선거 기간에는 비서 없이 혼자 인사를 다니는 후보가 많은 것이 그 방증이다. 그런데 당선 이후에는 시간이 빠듯하다는 이유로 다시 사전에 준비된 의전에 따라 다닌다고 한다.
사진기자들도 ‘의전 소품’으로 활용될 때가 있다. 보도자료에 나온 시간을 보고 현장에 도착해 보면, 그 시간이 본행사에 앞서 열리는 사전행사(기념식) 시간일 때가 있다. 단체장이 기념사를 하려고 연단에 오르면 행사 담당자들이 행사를 기다리는 사진기자들에게 다가와 “사진 좀 찍어 달라”고 종용하곤 한다. ‘우리 단체장은 이 정도로 언론의 관심을 받는 분이다’라며 과시하고 싶거나 단체장이 원래 플래시 불빛을 좋아하는 듯하다.
초청한 취재진에게도 이럴진대 행사에 동원된 사람들은 오죽할까. 의전만 신경 쓰고 배려는 없는 행사가 많다. 정부, 지자체, 관변단체 행사가 매력적이지 않은 이유다. 지난해 11월 말 김영삼 전 대통령 영결식 도중 어린이 합창단이 추위에 떨며 대기한 일도 이 같은 분위기에서 생겼다고 본다.
의전은 필요하다. 특히 외빈이 초청되는 경우 예의와 접대는 매우 중요한 절차다. 하지만 주객이 뒤바뀌어서는 곤란하다. ‘어르신 잔치’는 노인이 주인공이고 ‘꿈나무 대회’는 어린이가 주인공이며 ‘다문화 축제’는 그 가족이 주인공이다. 상대적 약자인 그들을 들러리로 세우고 정치인이나 고위공무원들이 개회사 기념사 인사말 축사를 줄줄이 이어가며 땡볕에 세우거나 비 오는 날씨 속에 두는 행사가 흔하다. 매력적인 행사는 주인공들을 대접하고 배려해야 완성된다. 아울러 주요 내외빈으로 초청돼 의전을 받고 기념사를 하는 분이라면 학창 시절의 기억을 되살리기 바란다. 교장 선생님 최고의 말씀은 ‘짧은 훈화’였다는 것을.
신원건 사진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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