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4.09.14 지식문화부)
도서관정보 -
331.1-ㅍ99ㅇ/ [종로]인문사회과학실
통념이 깨질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두 가지다. 혼돈에 빠지거나 카타르시스를 느끼거나.
만일 인류 역사가 폭력이 감소하는 쪽으로 진행됐다고 한다면?
아마도 혼돈 쪽으로 기우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매일 미디어에 넘쳐나는 살인과 폭력 사건 뉴스는 뭔가?
외신을 타고 들려오는 허다한 전쟁과 납치, 테러는 다 뭐란 말인가?
바로 지난 세기에만도 세계 대전을 두 차례나 겪지 않았나?
그런 사건들 뒤에는 늘 ‘말세’라는 탄식이 따르지 않았던가?
이 책은 인류의 잔혹사에 관한 통념을 일거에 뒤집는다. 대담하다.
저자는 진화심리학자이면서 뛰어난 대중적 글솜씨로 유명한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
‘빈 서판’ ‘언어본능’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등등 내는 책마다 화제였다. 이번에도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방대한 증거 자료들을 제시한다. 그러다보니 책은 무려 1406쪽. 초대작이다.
다양한 사례와 통계 수치들을 통해, 인류는 가정과 이웃, 부족 간, 무장 세력 간, 민족과 국가 간, 거의 모든 차원에서
폭력이 줄었음을 논증한다. 제시하는 자료들을 보면, 과거 전쟁 사망률은 현대 세계 대전 사망률보다 높았고,
중세 사회는 약탈과 고문으로 넘쳐났다. 살해 위험은 오늘날의 30배였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현대 인류가 더 폭력적이 돼간다고 믿는 이유는 뭔가. 무엇보다, 일종의 착시 효과 때문이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현대 인류가 더 폭력적이 돼간다고 믿는 이유는 뭔가. 무엇보다, 일종의 착시 효과 때문이다.
폭력적인 죽음의 발생 비율은 작아졌지만 절대 수치는 저녁 뉴스를 채울 만큼 늘 충분히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문명화와 더불어 사람들이 점점 순화하면서 폭력에 대한 관용 기준도 올라갔다.
과거엔 당연시됐던 체벌만 해도 이제는 전국적인 뉴스가 될 정도로 감식안이 높아졌다.
인류가 덜 폭력적인 방향으로 바뀌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인류가 덜 폭력적인 방향으로 바뀌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저자는 인간의 양면적인 본성과 환경 변화의 상호작용을 통해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의 뇌의 기본 설계는 진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이런 능력들 중 일부는 폭력으로 이끌지만,
또 다른 능력은 협동과 평화로 이끈다. 후자는 에이브러햄 링컨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라고 부른 것이다.
인간 본성의 천사 같은 부분은 네 가지다.
인간 본성의 천사 같은 부분은 네 가지다.
첫 번째, 감정이입. 우리로 하여금 남들의 고통을 느끼게 하고, 그들의 이해와 우리의 이해를 연결짓게 한다.
두 번째, 자기 통제. 충동적 행동의 결과를 예상하게 하고, 그에 따라 적절히 절제하게 한다.
세 번째, 도덕 감각. 같은 문화 속 구성원들의 상호 작용을 다스리는 일군의 규범과 터부를 규정한다.
네 번째, 이성의 능력. 우리로 하여금 자신만의 편협한 관점에서 벗어나게 하고,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을 반성하게 하며,
더 나아질 방법을 찾게 한다.
반면, 우리에게는 악마 같은 본성도 있다.
반면, 우리에게는 악마 같은 본성도 있다.
첫 번째, 포식적 폭력. 단순히 목적에 대한 실용적 수단으로서 동원된 폭력이다.
두 번째, 우세 경쟁. 권위, 위세, 명예, 힘의 욕구로서, 개인 간의 마초적 허세로 드러날 수도 있고 인종, 민족, 종교,
국가 집단 간 패권 경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세 번째, 복수심. 보복, 처벌, 정의를 지향하는 도덕주의적 욕구를 부채질한다.
네 번째, 가학성. 타인의 괴로움에서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마지막, 이데올로기. 보통 유토피아적 전망을 품고 있고, 무제한의 행복(선)을 추구하기 위해 무제한의 폭력을 정당화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인류 안의 선한 동기를 우세하게 만들었을까?
그렇다면 무엇이 인류 안의 선한 동기를 우세하게 만들었을까?
여섯 가지 경향성으로 설명된다.
첫 번째, 인류가 농업 문명으로 옮겨가면서 과거 자연 상태의 삶을 특징지었던 만성적 습격과 결투가 줄었다.
더불어 폭력적 사망의 비율이 5분의 1로 줄었다.
두 번째, 사분오열돼 있던 봉건 영토들이 중앙 권력들과 상업 하부 구조를 갖춘 큰 왕국으로 통합되었다.
세 번째, 17~18세기 이성의 시대가 열리면서 전제 정치, 노예제, 결투, 사법적 고문, 미신적 살해, 가학적 처벌,
동물에 대한 잔학 행위 같은 용인된 폭력을 철폐하려는 조직적 움직임이 일었다.
네 번째, 2차 세계 대전 이후 강대국과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서로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
다섯 번째, 냉전이 끝난 1989년 이래 내전, 집단 살해, 독재 정부의 억압, 테러 같은 조직적 충돌이 세계적으로 감소했다.
끝으로, 전후 시대에 들어와 더 작은 규모의 공격성, 이를테면 소수 집단, 여성, 아이, 동성애자, 동물에 대한 폭력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폭력을 줄여주는 외생적 힘들로는 다섯 가지를 꼽는다.
첫째, 리바이어던, 즉 힘의 적법한 사용을 독점하는 국가와 사법 제도는 착취적 공격의 유혹을 줄이고, 복수의 충동을 억제한다.
둘째, 상업은 타인을 악마화하거나 비인간화할 가능성을 낮춰준다.
셋째, 여성화로 인해 폭력의 미화에서 쉽게 벗어나며, 젊은 남성들의 위험한 하위 문화를 덜 양성한다.
넷째, 세계주의의 세력들, 가령 문해 능력, 이동성, 매스미디어는 공감의 범위를 넓혀준다.
다섯째, 이성의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폭력의 순환이 헛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인류의 미래 평화를 무한정 낙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인류의 미래 평화를 무한정 낙관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자로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많은 종류의 폭력이 줄었다는 사실 뿐이다.
모종의 신비로운 힘이나 우주의 운명이 인류를 영원히 더 높은 곳으로 이끈다는 생각과는 선을 긋는다.
폭력이 줄어든 것은 사회, 문화, 물질 조건에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조건들이 지속된다면 폭력이 계속 낮게 유지되거나 심지어 더 줄 수도 있겠지만
조건들이 지속되지 않는다면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의 무게는 단순히 인간의 폭력성 감소만을 논한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이 책의 무게는 단순히 인간의 폭력성 감소만을 논한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근대성에 대한 회의론을 문제 삼는다. 오늘날 사회 비평에서는 근대성에 대한 혐오가 깔려 있다.
비판자들은 종종 근대 기술이 인간 소외와 파괴, 사회 병리, 삶의 의미 상실, 대량 소비 문화 같은 부정적인 것들을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1970년대 이후, 그에 대한 반대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1970년대 이후, 그에 대한 반대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낙관론자들은 풍요와 기술이 도래하기 전에 인류의 일상이 고난투성이었다는 점을 일깨웠다.
하지만 현대의 낭만주의자들이 늘 마지막으로 꺼내는 도덕적 카드가 있다. 현대에는 폭력이 넘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주장에 종지부를 찍으려 한다. ‘평화로웠던 과거’에 대한 향수는 망상이라는 것.
우리는 평화를 향해 전진해왔으며 앞으로도 더 나아질 수 있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웅변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문명과 계몽에 대한 강력한 변론서이기도 하다.
역사상 최악의 폭력 사건 - 문유석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 중 "문명과 폭력" 중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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