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09.24 신동흔 기자)
일하는 여성에게 육아 떠넘기며 모성 착취하는 일본 사회 비판
'보육원 의무교육화' 대안 내세워
한국도 내년에 '인구 절벽' 도달… 출산 장려정책 한번 뒤돌아봐야
아이는 국가가 키워라 |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한연 옮김 | 민음사 | 184쪽 | 1만1000원
"아기를 갖고 싶다니/ 그 무슨 말이 그러니… 너랑 나 지금도 먹고살기 힘들어…
나의 삶에 여유가 있을 때 우리 둘만의 아기를 낳겠지."
작년 이맘때 한 케이블TV 채널의 신인 가수 경연 프로그램에서
작년 이맘때 한 케이블TV 채널의 신인 가수 경연 프로그램에서
'중식이밴드'가 부른 '아기를 낳고 싶다니' 가사의 일부다.
15~49세 가임기 여성이 평생 낳는 아이 숫자인 합계 출산율 1.2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최하위인 한국에서 서른두 살의 이 무명 가수는 일약 연애·결혼·출산 세 가지를 포기한
'삼포 세대'의 대변자로 부상했다.
일본 상황도 다르지 않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와 저출산을 겪고 있다.
일본 상황도 다르지 않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와 저출산을 겪고 있다.
생산 가능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인구 절벽'이 코앞이다. 우리 정부나 일본 정부나 잇따라 '저출산 고령화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두 나라 젊은 세대는 약속이라도 한 듯결혼과 출산을 미루며 인구 절벽의 끄트머리에 한쪽 발을 내밀고 있다.
어디서,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희망 난민' 등의 전작(前作)에서 목표도 없이
가난하게 살며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는 젊은이들의 이해 못 할 내면(內面)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던 젊은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31)가 이번엔 저출산
문제에 팔을 걷고 나섰다. 결론은 제목 그대로 "아이는 국가가 키우라"다.
그는 결혼과 출산을 신성한 의무처럼 강요하며 여성에게만 육아의 책임을 맡기는
일본 특유의 이데올로기를 혁파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주장한다.
부제인 '보육원 의무교육화'는 그 구체적 대안인 셈이다.
보육 시설 확대는 일본에서 새삼스러운 주장이 아니다.
보육원이 부족해 잠재적 대기자가 100만명 넘는 상황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후루이치에 따르면, 이런 일본은 모성(母性)을 착취하는 사회다.
엄마가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기라도 하면 '모성애가 없는 것 아니냐'며 비판한다.
장애인 휠체어는 봐주면서도 유모차를 밀고 전철에 타는 엄마는 눈총을 받는다.
아이가 공부를 못하거나 친구들과 말썽을 일으키는 것도 엄마 탓이다.
모성이 이토록 전지전능한 존재인 것은 합당한가. 아빠는 뭐 하고 있는가.
그는 일본의 '전업주부' 개념 자체가 허구라고 이야기한다. 20세기 초반 돈 잘 버는 대규모 기업집단에 다니는
'샐러리맨'과 함께 잠시 등장했을 뿐, 인류 역사를 통틀어 귀중한 노동력이었던 '젊은 여성'을 육아에만 전념케 하는 것은
심각한 '인력 낭비'라는 것. 저자는 "국가가 가정, 특히 여성들에게 떠안겼던 육아 책임과 의무를 적극적으로 감당해야
저출산뿐 아니라 저성장 문제를 타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성에게 일하기 쉽고 아이를 낳기 쉬운 환경을 제공하면 출산율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여성이 육아 기간에 일할 수
여성에게 일하기 쉽고 아이를 낳기 쉬운 환경을 제공하면 출산율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여성이 육아 기간에 일할 수
있으므로 그만큼 세수도 늘어난다. 여성이 경력 단절 없이 일하게 되면 가정 소득이 늘어 과세 기반도 안정된다.
저자는 "엄마들이 일하면 일본의 전통적 가족이 무너진다는 우려가 있는데, 지금대로 두면 일본 자체가 무너질 것"이라며
"남성 혼자 16시간 일하는 사회보다, 남성도 여성도 8시간씩 일하고 공동으로 육아와 가사를 맡는 사회가 훨씬 인간적이지
않은가"라고 묻는다. 1970년대 이후 저출산 타개 정책을 폈던 프랑스의 합계 출산율이 2.0을 넘어선 비결도
남녀 격차 해소가 핵심이었다. 글로벌 통계 자료에서도 국가별 출산율은 남녀 성(性) 격차 지수가 높을수록 낮게 나타난다.
한국과 일본의 출산율이 유독 낮은 것은 결국 육아를 여성, 엄마 혼자서 떠맡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저자는 "보육원에서 경험하는 사회화 과정을 통해 익히는 이른바 '비인지 능력'을 통해 아이들은 고도의 사회성과 공감 능력,
인내심 등을 익혀 학업 성취도를 높이고, 이는 가정 형편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을 줄여준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미국의 연구에선 양질(良質)의 영·유아 교육을 받은 아이가 어른이 됐을 때 높은 수입과 낮은 범죄율을 보여주는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나라는 내년이면 생산 가능 인구가 급감하는 '인구 절벽'에 도달한다.
우리나라는 내년이면 생산 가능 인구가 급감하는 '인구 절벽'에 도달한다.
과거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아니고선 인구가 줄어드는 일은 없었다는 점에서 이는 비상 상황이다.
그동안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내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뛰어든 출산 장려금 정책은 돈 많이 주는 곳서 아기만 낳고 이사 가는 이른바
'먹튀족'을 등장시켰고, 어린이집에선 아동 폭행이나 셔틀버스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가수 중식이는 청년들에게 아이를 낳으라는 말에 대해 "책임질 대상(아이)이 있는 거니까, 가족을 인질로 잡아 놓고
계속 일을 시키려고, 애를 낳으라고 하는 꼴밖에 안 되는 거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일견 철부지처럼 들리는 이 말을 곱씹어보면, 혹시 우리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청년들 탓만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삶에 여유가 있을 때 우리 둘만의 아기를 낳겠지'라는 마지막 가사처럼,
누구보다 아기를 갖고 싶은 이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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