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09.09.11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지도는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파악하는지 실물로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약 600개 정도 보존되어 있는 유럽의 중세 지도에는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이 그대로 녹아 있다. 중세 지도는 T-O 지도 혹은 바퀴 지도(wheel map)라고 불리는데, 전체적인 생김새가 둥근 바퀴 모양이고, 그 내부를 큰 강과 바다가 T자 모양으로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헤러퍼드 지도(Hereford Mappa Muni·1300년 경)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오늘날의 지도와 달리 이 시대의 지도는 위쪽이 북쪽이 아니라 동쪽이다. 그러므로 윗부분이 아시아 대륙, 아래 왼쪽은 유럽, 아래 오른쪽이 아프리카 대륙이다.
1300년 경 헤러퍼드 지도.
정중앙('배꼽'·omphalos)에는 세계의 중심으로서 예루살렘이 자리 잡고 있고, 제일 위쪽 그러니까 동쪽 끝에는 에덴동산이 그려져 있으며, 그 근처에는 중세 전설상의 사제 요한 왕국이 있다. 바벨탑과 노아의 방주도 등장하고, 소돔과 고모라, 게다가 말세에 사람들을 유린한다는 곡과 마곡의 땅도 버젓이 그려져 있다. 이처럼 중세 지도는 세계의 객관적 지리가 아니라 성경 교리에 따른 관념적 세계의 모습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서 단순한 지리 공간이 아니라 그곳에서 인류가 살아온 역사의 흐름까지 복합적으로 담고 있는 시공간을 표현한다. 즉, 제일 윗부분의 에덴동산에서 시작하여 바벨탑과 예루살렘을 거쳐 당대의 유럽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궤적을 읽을 수 있으며, 거꾸로 보면 다시 동쪽 끝의 낙원으로 '올라가려는' 소망을 나타낸다.
근대에 들어와서 지도의 방위가 바뀌어 대부분의 지도가 북쪽이 위로 된 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원래의 뜻은 동쪽 방향 정하기)이 바뀌었다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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