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09.05.25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내게는 죽기 전에 꼭 쓰고 죽으리라 다짐한 책이 한 권 있다. 그냥 '생명'이라는 제목의 책인데 아무래도 상당히 두꺼운 책이 될 성싶다. 생물학의 관점뿐 아니라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물론 심지어는 예술의 눈으로 바라본 생명의 모습을 그리려니 자연스레 두툼해질 것 같다. 여러 해 전 미국에 간 길에 만난 예전 대학원 친구에게 이런 나의 꿈을 밝혔더니 대번에 "그럼 못 쓰고 죽겠군" 하는 것이었다. 죽기 전에 뭔가 하겠다던 사람치고 제대로 끝낸 사람을 본 적이 없다며 지금 당장 시작하라고 충고했다.
그의 충고를 받아들여 그때부터 조금씩이나마 꾸준히 쓰는 과정에서 나는 생명의 가장 보편적인 특성이 뜻밖에도 죽음이라는 걸 깨달았다. 적어도 이 지구라는 행성에 태어나는 모든 생명은 언젠가 반드시 죽음을 맞이한다는 점에서 생명의 본질은 다름 아닌 죽음이다. 나는 이를 '생명의 한계성'이라고 적어두었다.
하지만 생명의 한계성은 어디까지나 생명체의 관점에서 바라본 생명의 속성이다. 우리는 앞마당의 닭들이 싸움도 하고 짝짓기도 하고 알을 낳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닭'이라는 생명의 주체가 바로 그 닭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에 따르면 닭은 "달걀이 더 많은 달걀을 생산하기 위해 잠시 만들어낸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달걀은 다름 아닌 유전자를 의미한다. 달걀 속의 유전자가 닭을 만들어 달걀을 생산하다 여의치 않아지면 그 닭을 죽여버리고 또 다른 닭을 만들어 달걀 생산을 계속하는 게 닭의 삶이라는 것이다. 닭은 이 세상에 태어나 한동안 살다가 결국 한 줌 흙으로 돌아가지만, 그 닭을 만들어낸 유전자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닭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생명체의 삶은 유한하지만 유전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생명은 '영속성'을 지닌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유전자는 생명의 끈을 놓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홀연 자신의 생명 끈을 놓아버렸다. 하지만 그의 육체는 사라져도 그의 유전자는 남는다. 자손들의 몸을 통해 남는 유전자뿐 아니라 그의 이상이 담긴 '노무현표' 문화유전자(meme)도 세대를 거듭하며 퍼져갈 것이다. 혁명가로서 그가 뿌린 문화유전자의 힘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할지 모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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