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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17] 낙타

바람아님 2013. 8. 1. 08:47

(출처-조선일보 2009.07.24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동물들이 많이 있지만 그 가운데 특기할 만한 사례로 낙타를 들 수 있다.


다소 놀라운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원래 낙타는 북아메리카가 원산지다. 약 1만3000년 전에 소빙하기가 찾아와 해수면이 지금보다 크게 낮아져서 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이 연결되었을 때 낙타가 시베리아 쪽으로 들어왔다. 정작 북아메리카에서는 낙타가 멸종되었던 반면, 아시아에 들어온 낙타는 어렵사리 적응하여 살아남았다. 낙타는 다른 포식동물들을 피해 일부러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존하는 전략을 사용한 셈인데, 이런 특성을 인간이 이용하여 사막과 초원지대의 짐바리 짐승으로 부리게 된 것이다.


낙타를 사용하는 데에 결정적인 계기는 서기 200년경에 낙타의 혹을 에워싸는 높은 안장이 발명된 것이다. 이 방식은 아라비아 반도와 그 인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처음 사용되었다가, 그 후 무슬림 군대가 광범위한 지역으로 확장해 가면서 널리 전파되었다. 오랫동안 물을 마시지 않고도 버티고 모래 위를 지치지 않고 걸을 수 있는 데다가 가시가 있는 식물도 먹을 수 있는 등의 장점 때문에 낙타는 중앙아시아와 사하라 사막 지역의 핵심적인 교통수단이 되었다. 낙타는 마차가 다니지 못하는 좁은 길, 늪지와 거친 돌길까지 가리지 않고 다닐 수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슬람권의 중심지에서 도로 상태가 나빠졌고 바퀴 달린 마차가 사라질 정도가 되었다.

 

19세기에 기차가 등장하기 전까지 유라시아-아프리카 대륙의 문명권들과 그 주변 지역을 연결하는 일은 '사막의 배'라고 불리던 낙타가 없이는 불가능했다. 게다가 더운 사막지역에서는 단봉낙타(dromedary)가, 추운 스텝 지역에서는 쌍봉낙타(camel)가 적응하여 일을 하는 '세계적인 낙타의 분업'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이야말로 신의 섭리로 보일 정도이다. 현재의 관점에서는 낙타의 수송량이 가소로운 정도로 보이지만, 아랍 지역·인도·중국·북아프리카·중앙아시아 등 여러 지역 간의 경제적 혹은 문화적 교류가 진행된 것은 거의 전적으로 낙타 덕분이었다. 낙타는 우리 역사와는 큰 인연이 없었지만,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여러 문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나가는 데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참고이미지)

동튀르키스탄 전쟁의 승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제작한 동판화.(청의 군대가 대포이동에 낙타 이용장면)

건륭제의 명으로 주세페 카스틸리오네를 포함한 유럽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을 토대로 총 16장의 동판화를 만들었는데, 

이 동판화는 당시 청 제국 군대의 위용을 웅장하게 드러낼 뿐만 아니라 무기 또한 세밀하게 묘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