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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의 종횡무진 인문학] 항아리에 넣고 땅속에 묻은 '조선 솜사탕'

바람아님 2016. 11. 12. 08:26

(조선일보 2016.11.12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


이시필 '소문사설, 조선의 실용…'


조선 숙종 때 궁중 의사로 근무했던 이시필(657~1724)은 자신의 저서 '소문사설'에 솜사탕 만드는 법을 적어 두었다. 

백설탕을 정제해서 색깔은 희고 결은 보송보송하게 만든 다음, 항아리에 넣고 단단히 봉해서 땅속에 3~4년 정도 묻어둔다. 

그리고 나서 설탕을 꺼내면 가볍고 푸석푸석하니 쉽게 부서져서 씹을 필요도 없고 입에 붙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시필(弼)이 솜사탕 만드는 방법을 익힌 것은 임금에게 바칠 별미를 준비하기 위해서였을 터이다. 

'소문사설'에는 두부를 끓이면 표면에 만들어지는 두부피(豆腐皮), 개성 식혜, 순창고추장 등등 그가 알고 있던 온갖 진미의 

요리법이 자세히 적혀 있다. 청나라에서 전해진 계란탕과 연근녹말가루죽, 부산 동래의 일본인에게 배운 설탕쌀죽과 

가마보코처럼 진귀한 외국 음식을 만드는 법도 언급되어 있다.


이시필은 청나라에서 직접 보고 들은 벽돌 만드는 법, 중국식 온돌 만드는 법, 수레 만드는 법도 구체적으로 적었다. 

박제가와 박지원 같은 북학파 지식인도 이런 기술을 조선 사회에 소개했다. 

하지만 그들이 전하는 벽돌·온돌·수레 만드는 법은 막연하거나 다소 추상적이었다.


'소문사설, 조선의 실용지식 연구노트'

소문사설(謏聞事說), 조선의 실용지식 연구노트

저자 이시필/ 역자 백승호, 부유섭, 장유승

휴머니스트/ 2011.02.07/ 274p

911.05-ㅇ793ㅅ/ [정독]인사자실(2동2층)


반면 실제로 물건을 만들고 도구를 다루는 중인 계층에 속했던 이시필은 달랐다. 

'소문사설'에는 실생활에서 쓰이는 건물·도구·사물·음식을 만드는 방법이 상세하게 적혀 있다. 

그에게는 이처럼 쓸모 있는 정보를 조선 사회에 적용시킬 권력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 같은 중인들은 힘이 없어 실행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선 계획을 세우고 비용을 모으면서 사람들을 만나면 권하곤 한다."


이시필은 이념을 앞세우기보다는 구체적인 사실을 조선 사회에서 공유해서 조금이라도 현실을 낫게 만들고자 했다. 

백승호·부유섭·장유승이 옮기고 상세한 주석을 붙인 '소문사설, 조선의 실용지식 연구노트'(휴머니스트)는 

300년 전 한반도에 살았던 중간 계급 지식인의 간절한 바람을 21세기의 한국인들에게 생생하게 전해준다. 

무엇보다 '소문사설'은 잔재미가 있다. 

때때로 이 책을 펼치면서 필자는, 조선시대에도 따뜻한 온기를 지닌 사람들이 살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