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1.09 이다비 기자)
“간편인증을 사용하니 공인인증서를 다시 발급받을 일도 없고, 무엇보다 인증 단계가 간단하고 결제가 쉬워져 좋아요.
쉽다고 이거저거 다 결제하다 통장이 ‘텅장(통장이 텅텅 빈다는 뜻의 신조어)’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하하.”
지난해 여름 윤모(29)씨는 사용하던 공인인증서가 만료돼 애를 먹었다. 공인인증서 갱신 기간을 놓쳐 새로 발급받고,
발급받은 공인인증서를 PC에서 스마트폰으로 일일이 복사해야 했기 때문이다.
윤씨는 지난해 말 KB국민카드에서 새롭게 출시한 ‘간편인증’을 접하고 나서 공인인증서 갱신·재발급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다. 윤씨는 이제 KB국민카드의 앱카드인 ‘K-모션’에서 30만원이 넘는 물건을 구매할 때나
K-모션 비밀번호를 변경할 때도 간편인증 비밀번호 6자리만 누른다.
▲ 광화문 KB국민카드 사옥 전경 / KB국민카드 제공
KB국민카드가 지난해 12월에 출시한 ‘간편인증 서비스’는
블록체인(Blockchain)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개인 인증 서비스다.
K-모션에서 사용 중인 신용카드 정보를 입력하고, 비밀번호 6자리를 설정하면
각종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기존 공인인증서와 달리 매년 번거롭게
재발급받을 필요도 없다. 설정한 비밀번호도 쉽게 변경할 수 있다.
지난 5일 간편인증과 그 안에 들어가는 블록체인 기술을 알아보기 위해
KB국민카드 광화문 본사를 찾았다. KB국민카드는 ‘블록체인 기반 비밀번호
개인인증’을 국내서 상용화했다. 전북은행도 지난해 4월 앱카드 로그인에
블록체인 기반 개인인증을 도입했지만, 로그인에 한정 돼 아직 물건을
구매하는 등 거래할 때는 블록체인 기반 개인인증이 쓰이지 않는다.
◆ 보수적인 금융권의 ‘파격’ 시도...블록체인 상용화 선점
블록체인은 가상화폐인 비트코인(Bitcoin)에 채택된 기술이다.
거래 원장(전체 거래 장부)을 중앙 서버에 보관하지 않고 네트워크에 연결된
다수 컴퓨터에 분산시켜 ‘분산원장’으로 불린다.
특정 컴퓨터 서버에 거래 장부를 저장하지 않아 보안성이 뛰어나며
거래 절차와 시간도 단축돼 불필요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이날 KB국민카드 디지털사업부 직원들은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 연구에 한창이었다.
김성수 디지털사업부 과장과 정두용 디지털사업부 대리는 스마트폰으로 K-모션에 접속해 비밀번호 6자리를 순식간에
입력하며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두 사람은 KB국민카드에 간편인증을 도입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 KB국민카드 본사 내 회의실에서 디지털사업부
직원들이 스마트폰으로 간편인증을
시연해 보이고 있다. / 이다비 기자
김성수 과장은 “2015년 여름 당시 KB국민카드의
적립 포인트였던 ‘포인트리’를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으로 전환하는 서비스를 열면서
블록체인 기술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KB국민카드 디지털사업부(전 핀테크사업부)에서는
지난해 초부터 블록체인을 구체적으로 서비스에
접목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보수적인 금융권에서
‘파격적인 시도’였지만 회사가 지지해줘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KB국민카드는 먼저 내부 서버 장비를 활용해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구축했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회원사만 참여할 수 있는 블록체인이다.
어떠한 제약 없이 모든 이에게 공개되는 ‘퍼블릭 블록체인’보다 폐쇄적이지만 신뢰성이 더 높다는 게 KB국민카드 측의
설명이다. KB국민카드는 블록체인 기술 전문 업체인 코인플러그와 기획단계부터 논의하면서 간편인증을 만들어냈다.
KB국민카드는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있었던 금융보안원 블록체인 실무기획단(TF)에서도 활동하고 타 금융업체에도
경험을 공유하며 블록체인 상용화 선두 업체로서 입지를 쌓아가고 있다.
◆ KB국민카드 간편인증, 블록체인 기반인지 모르는 사람 더 많아
KB국민카드 간편인증은 도입된 지 약 한 달이 됐다. 김성수 과장은 “아직 시범적으로 도입해보는 단계라 큰 홍보를 하지는
않았지만,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 인증을 할 때 간편인증을 통하면, 비밀번호 6자리만 입력하면 되니
사용자들이 편하다고 한다”며 “특히 회사 내 직원들이 간편인증을 써보고 응원과 격려를 해주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KB국민카드에서 블록체인 기반 개인인증을 만들면서 제일 우선시 한 것은 ‘고객 입장에서 불편한 것을 최대한 없애자’ 였다.
블록체인과 같은 어려운 용어를 지양하고 ‘간편인증’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또 사용자가 기존의 인증방식에서 쉽게
간편인증으로 넘어올 수 있게 지문인식·생체인증과 같은 생소한 방식이 아닌 비밀번호를 택했다.
▲ K-모션 애플리케이션에서 볼 수 있는
간편인증 등록 화면(왼쪽)과
간편인증 블록체인 설명 화면.
/ 이다비 기자, KB국민카드 제공
정두용 대리는 “KB국민카드의 간편인증이
블록체인 기반 인증 기술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며 “간편인증 옆에 떠 있는
작은 물음표 모양을 눌러야 블록체인 기반 인증이라는
설명이 나오게 했다”고 말했다.
디지털사업부 직원들은 어려운 블록체인 기술을
쉽게 고객에게 풀어 설명하기 위해 며칠을 끙끙대며
소개 문구를 만들었다고 한다.
◆ ‘블록체인=인증 기술?’ 블록체인은
확장성 큰 데이터 저장·확인 기술
김성수 과장과 정두용 대리는 “블록체인 기반
개인인증이 언젠가는 복잡한 공인인증을 대체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간편인증이 곧 공인인증을 대체할 완벽한 ‘인증’ 또는 ‘부인방지’ 수단이라고 결론지으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공인인증서 의무 사용이 2015년 3월에 폐지되면서 블록체인 기반 인증, 생체 인증 등이 뜨기 시작했다.
이런 대체 인증 서비스는 완전히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법적 문제도 있고 범용성 문제도 있기 때문에 공인인증서를 완벽히 대체한다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
실제 KB국민카드뿐만 아니라 블록체인 기반 지문인식 개인인증을 도입한 롯데카드 등 다른 금융업계도 블록체인을
사용하고 있지만 아직 시범 단계에 머물러있어 당장 공인인증서를 완벽히 대체하는 건 무리가 있다.
하지만 블록체인의 응용 범위는 무궁무진하다는 게 KB국민카드의 설명이다.
정두용 대리는 “블록체인은 인증 기술이라기보다 더 큰 의미”라면서 “데이터를 분산해서 저장하는 방식과 저장된 데이터가
맞는지 확인하는 ‘분산 원장’ 기술 전반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정 대리는 “블록체인을 쓰는 비트코인이 가상화폐다 보니 금융권이 먼저 블록체인에 관심을 갖게 됐고,
금융권에서 기본적인 서비스가 개인인증이다 보니 개인인증에 블록체인 기술을 더하게 된 것일 뿐“이라면서
“블록체인이 금융권에서만 쓰는 기술이 아닌 만큼 ‘확장성’이 큰 기술이다”고 강조했다.
가령, 부동산 업계에서는 블록체인과 임대업을 연계해서 매달 임대료를 체크하고 관리하는 시도를 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과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연계해 집세를 내지 않으면 문이 열리지 않도록 하는 시도도 실제로 이뤄지고 있다.
▲ K-모션 애플리케이션에서 간편인증 비밀번호 6자리를
입력하고 있는 모습 / 이다비 기자
KB국민카드 디지털사업부는 블록체인 기술을
개인인증을 넘어 카드 서비스 전반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블록체인 기술만 가지고 있다면 데이터가
필요로 하는 곳에 블록체인 기술을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성수 과장은 “일정상 변동될 수는 있지만,
KB금융그룹 전체로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 범위가
넓어진다는 큰 방향은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KB국민카드는 올 상반기까지 시범단계인
블록체인 기반 개인인증 서비스를 내실화한 뒤 KB금융그룹의 통합 멤버십 플랫폼인 ‘리브 메이트(Liiv Mate)’ 내
다른 서비스에도 적용할 예정이다.
내년부터는 단순히 인증을 넘어, ‘스마트계약’처럼 사람이 개입하지 않아도 블록체인을 접목한 프로그램이 스스로
구동될 수 있는 서비스를 시도하고 시스템 전반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스마트 계약은 블록체인을 이용해 서로 합의된 조건을 만족하면 자동으로 거래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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