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같은 제국인데 로마제국은 천년이 넘게 지속된 반면 칭기즈 칸의 원나라는 100년도 채 안 돼서 멸망했을까? 세계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 같다. 역사학자 미야자키 마사카쓰는 중국은 칭기즈 칸의 몽고제국을 ‘원’이라는 왕조이름을 붙여서 은근슬쩍 자기네 나라인 양 말한다고 비판한다. 엄밀히 보면 원나라는 중국이 몽고의 식민지였던 시절이라는 것이다. 칭기즈 칸의 제국은 중국 영토를 벗어나서 서남아시아까지 확대되었고 중국은 그 중 일부였을 뿐이었다.
이처럼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졌던 대제국이 90년 만에 망한 이유는 무엇일까? 학자들은 그 이유를 몽골제국이 말을 군사력의 근간으로 하고 있어서라고 보고 있다. 다른 제국과는 달리 말 때문에 근거지인 몽골초원을 떠날 수 없었고, 그러다 보니 정복한 국가에 지배력을 강화시키지 못해 제국이 유지되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다 건축가로서 하나 더 추가한다면, 몽골제국이 빨리 망한 것은 건축문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건축물은 제국이 정복지를 통치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집트제국은 피라미드, 로마는 콜로세움, 중국은 만리장성과 대운하 등으로 건축물을 만들어서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했다. 하다못해 유목민의 제국인 이슬람제국도 로마의 건축유산인 ‘하기아 소피아’로부터 배워서 정복지마다 하기아 소피아 모양의 모스크를 건설했다. 심지어 20세기에 지어진 이태원에 있는 이슬람사원도 같은 모양이다. 그런데 몽골제국에는 말과 텐트만 있고 건축은 없었다. 유목민족이어서 말을 잘 탔고, 멀리 갈 수 있었고, 그로 인해서 어느 누구보다도 영토 확장에는 일가견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건축문화가 없었다.
건축은 왜 정복지 통치에 영향을 줄까? 그 이유는 무겁고 거대한 건축물들은 권력의 상징이 되기 때문이다. 선사시대 때 고인돌은 수레바퀴도 없고 가축도 없던 시절에 누군가가 수십명의 사람을 부려서 무거운 돌을 옮겨서 세운 결과물이다. 따라서 그 주변의 부족들은 고인돌을 보면서 무거운 건축물을 만든 사람의 세력을 느꼈을 것이다. 고인돌은 일종의 무력시위였다. 무거운 건축물은 통치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통치의 영향력을 느끼게 해준다. 이집트나 로마 같은 제국이 거대하고 무거운 건축물에 집착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런데 유목민족의 텐트는 너무 가볍다. 유목생활이라는 것이 끊임없이 이동을 해야 하는 생활방식이다 보니 무겁게 집을 지을 수 없었다. 칭기즈 칸의 사람들은 말을 타고 와서 신들린 듯이 살육을 하고 정복을 하지만, 그들이 지나가고 난 자리에는 정복자를 두려워하게 만들 건축물을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정복자가 안 보이게 되면 주변 부족들이 쉽게 항거를 하고 제국은 순식간에 쪼개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천년을 유지한 로마는 어떻게 건축을 이용했는가? 그들은 일단 정복지에 도시를 세우면서 그리스식 신전과 콜로세움을 세웠다. 신전을 만들어서 종교를 통한 소프트웨어적인 통일을 이루고 건축을 통해서 하드웨어적인 통치를 완성했다. 그런데 문제는 로마제국은 북아프리카부터 북유럽까지 그 영토의 범위가 너무 넓었다. 기후도 달랐고 무엇보다 구할 수 있는 건축재료가 정복지마다 달랐다. 어느 지역에는 대리석이 나오지만 어느 지역에는 없었다. 건축재료가 달라지면 건축양식이 바뀐다. 그렇게 되면 건축으로 통일된 ‘로마성(性)’을 만들어내기가 힘들다. 그 건축물이 로마의 건축이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는 통일된 재료가 필요했다. 로마인들은 로마를 대표하는 통일된 건축재료를 어느 지역에서나 구할 수 있는 흙으로 만든 벽돌로 해결했다.
[구약 바벨탑에도 나오는 벽돌의 역사]
벽돌의 역사는 아주 오래됐다. 우리가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고대 이야기인 구약성경책 속 바벨탑이야기에도 벽돌이 나온다. 성경은 사람들이 벽돌을 구워서 바벨탑을 지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바벨탑은 지금의 이라크지역에 지어졌던 ‘지구라트’ 신전을 말하는데, 실제로 기원전 7000~8000년경의 메소포타미아문명에서는 벽돌 구조체가 발견되고 있다. 벽돌은 점토를 틀에 넣고 찍은 다음 건조시키거나 불에 구워서 만든 건축자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