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날씨가 풀어지고 다시 봄이 왔다. 낮의 길이가 밤보다 길어지고 머지않아 개나리를 시작으로 벚꽃도 필 것이다. 기다림 때문이었을까. 봄이 되면 어김없이 마음이 들뜬다. 그저 바깥으로 나가고 싶고 가만히 있지 못한다. 공연히 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리기도 하고 뭔가 새롭고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 햇빛의 힘이다. 겨우내 가라앉아 있었던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힘이다.
뇌로 들어온 빛에 대한 정보는 기분의 상승 및 의욕과 관련된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는 부위를 건드리게 된다. 이 세로토닌은 빛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햇빛이 강렬해짐에 따라 그 분비량도 증가한다. 그래서 햇빛이 강해지면 기분이 좋아지고 밖으로 나가고 싶어지며 이유 없이 들뜨게 된다. 봄맞이 옷이나 물건을 장만하는 충동구매를 하게 되고, 과감한 투자를 하기도 한다. 들뜬 마음은 살짝 로맨스를 경험하게 한다. 몸과 마음이 달아오르고 멍하니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시간이 부쩍 늘어나기도 한다.
이처럼 봄이 오면서 신체의 생물학적 체계가 활성화되고, 그에 따라 신경전달물질의 분비 수준, 호르몬 밸런스, 기초대사율 등 다양한 측면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바로 ‘봄의 열병’ 현상이다. 마음과 몸의 에너지 수준이 높아지게 돼 그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사람들과의 관계도 시도하거나 성적 상상이나 욕구가 증가한다. 겨울에 비해 전반적으로 긍정성이 높아지고 행복감이 훨씬 더 충만해진다.
그러나 이렇게 활기찬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다. 봄이 오면 흔히 경험하는 행복하고 기분 좋은 감정, 이런 과한 에너지는 때로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계절의 증가하는 에너지가 오히려 스트레스 요인이 되기도 하고, 지나칠 정도로 힘들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염없이 졸리고 피곤해지고 입맛이 없어지기도 한다. 매일의 반복적인 업무가 갑자기 지루해지고 따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호르몬 변화로 인해 싱숭생숭하면서 감정기복이 심해지게 되고 불안정이나 불안감이 더 커지게 된다.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사람에겐 이러한 신체 변화의 에너지가 더욱 과도하게 느껴진다. 힘겹게 겨울을 버티고 난 후, 역설적으로 4월에 자살률이 가장 높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뭔가 시도하려고 하는 어린아이 같은 무모함은 자칫하면 통제하기 어려운 행동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봄은 금방 지나가는 계절이기에 신체도 곧 계절의 변화에 적응해 갈 것이다. 이 계절의 불안과 혼란이 있었다면 미리 준비해보는 것도 좋다. 매년 나의 봄은 어땠는지, 기분은 어땠는지, 불필요한 소비와 투자로 손해 본 기억은 없었는지, 아니면 늘 지치고 힘들어 했는가를 기억해 두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나 자신을 준비시킬 필요가 있다. 변화를 감지하는 것만으로도 봄을 무사히 넘기고 행복하게 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다시 나의 봄을 돌아보자. 무모한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닐까. 과한 운동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닌가, 필요 없이 모임 약속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나치게 과감한 투자를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잠시 멈추고 머무는 지혜가 필요하다. 조금의 적응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이 화사한 봄의 열병을 이겨내는 힘이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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