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0.05.14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국고 수입과 지출을 잘 맞춘다는 것은 역사상 언제나 지극히 어려운 과제였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전 국민에게 공평하게 세금을 부과하고 효율적으로 징세한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국왕과 정부는 우선 필요한 대로 지출을 하고 그다음에 그 비용을 어디에선가 찾아내는 방식으로 재정을 운용했다. 급전이 필요할 때 제일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안은 거금을 가진 대상인들에게 돈을 빌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개 그 돈을 갚기 위해 다시 돈을 빌리는 일이 계속되어서 부채 액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16세기의 스페인이었다.
1556년 7월에 펠리페 2세가 국왕에 등극했을 때에는 1561년까지의 정부 수입이 전부 저당잡혀 있는 상태였다. 더구나 그 자신도 과도한 정치적 야망 때문에 계속 전쟁을 벌였으므로 사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국왕은 거액의 단기부채를 고리로 빌리는 위험한 방식에 의존했고 그로 인해 전국 각지의 국유지나 광산, 특정 사업 운영권 같은 담보가 부유한 상인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물론 이런 방식이 무한히 계속될 수는 없다. 채무에 시달리던 국왕이 할 수 있는 일은 이자율을 강제로 낮추든지, 더 나아가서는 노골적으로 파산선고를 하는 것이었다.
펠리페 2세는 1560년에 정부 파산선고를 했다. 차입금의 지급을 유예하고 단기부채를 연 5%의 이자를 지급하는 장기채(후로·juros)로 강제 전환시켰다. 그 후에도 전쟁에 따른 정부 지출이 계속 증가함에 따라 스페인은 여러 차례 파산선고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1575·1596·1607·1627·1647· 1653년). 그때마다 매번 이전에 빌린 차입금을 장기채로 전환하여 강제로 받아들이게 했다. 당연히 국가의 채무 액수는 증가했다. 1660년대에 이르면 정부 수입 중 70%가 이자 지급용으로 사용되었고, 정부 소득 10여년치에 해당하는 원금은 갚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국가의 운명은 많은 부분 재정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문제를 매끄럽게 해결하지 못하면 스페인처럼 몰락해서 이류 국가로 떨어질 수도 있고 프랑스처럼 대혁명을 겪을 수도 있다. 현재 남유럽 국가들이나 미국이 직면한 문제가 이것이다.
'人文,社會科學 > 人文,社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2] 엄지 (0) | 2013.09.15 |
---|---|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59] 수세식 화장실 (0) | 2013.09.14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0] 생물다양성의 해 (0) | 2013.09.13 |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57] 부르카 (0) | 2013.09.12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9] 생활의 달인 (0) | 2013.0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