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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59] 수세식 화장실

바람아님 2013. 9. 14. 09:17

(출처-조선일보 2010.05.21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물을 이용해서 사람의 분뇨를 위생적으로 처리하는 수세식 화장실은 의외로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기원전 26세기경 인더스 문명권의 도시인 하라파와 모헨조다로, 그리고 기원전 18세기경 크레타 섬의 크노소스 궁전에서도 이미 수세식 변기가 사용되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현대식 변기를 개발한 사람은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시인이자 발명가인 존 해링턴(1561~1612)이었다. 그는 1596년에 두 개의 수세식 변기를 만들어서 하나는 자신의 저택에 설치하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대모(代母)인 엘리자베스 여왕을 위해 리치먼드 왕궁에 설치했다. 이 발명품은 물탱크의 바닥에 플러시 밸브를 달아 물을 내리는 장치와 배설물을 물로 씻어 내리는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여왕은 한 달에 한 번 목욕을 한다고 자랑할 정도로 당시로는 예외적으로 청결에 신경을 쓰는 인물이었지만, 소음이 너무 커서 이 변기를 자주 사용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해링턴의 선구적인 발명품은 널리 사용되지는 못했고, 런던 시민은 해오던 대로 계속해서 지하 분뇨 구덩이에 배설물을 버렸다. 그 후 2세기가 더 지나서야 수세식 변기가 개량되고 또 널리 보급되었다. 특히 1778년에 독학 발명가인 조지프 브라마가 밸브 장치를 개선한 변기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1797년까지 6000개가 팔릴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수세식 화장실의 보급은 도시의 위생을 개선했을까? 초기에는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식수원인 템스 강으로 오물을 직접 흘려보내서 악취가 극심하게 되었고, 만조 때에는 오물이 낡은 하수도관을 타고 가정집의 지하실로 역류하기도 했다. 당연히 수인성 질병이 만연하였다. 특히 여러 차례 콜레라가 발병하여 엄청난 피해를 불러일으켜서, 이것이 위생상태의 근본적인 개선을 요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변호사이자 사회 개혁의 선구자였던 에드윈 채드윅 같은 인물의 노력 덕분에 완전히 새로운 상하수도 시스템이 마련되었다. 하수도관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거주지에서 먼 곳에서 하수를 처리할 수 있게 된 다음에야 수세식 화장실이 제자리를 잡게 되었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수세식 변기는 오랜 세월에 걸친 각고의 노력의 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