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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2] 엄지

바람아님 2013. 9. 15. 12:46

(출처-조선일보 2010.01.18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어준 신체기관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뇌를 꼽을 것이다. 나도 동의한다. 그러면서도 슬쩍 손도 함께 끼워 넣고 싶다. 손 중에서도 특히 엄지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진정 인간으로 거듭나게 해준 일등공신이었다. 물리학자 뉴턴이 인간의 엄지가 신의 존재를 입증한다고 했을 정도로 엄지는 앞발을 손으로 바꿔준 엄청난 진화적 도약이었다. 동물원에서 코로 과자를 받아먹는 코끼리를 보며 감탄의 박수를 치고 있는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라. 엄지 덕택에 코끼리의 코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게 정교해진 우리의 손은 실로 위대한 진화의 산물이다.

인간의 손은 모두 27개의 뼈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세 개가 나머지 손가락들과 마주 보는 엄지를 만들어낸다. 마주 보는 엄지는 거의 모든 영장류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코알라와 주머니쥐, 그리고 판다도 다른 발가락들과 마주 보는 엄지를 갖고 있어 나무를 타거나 이파리를 뜯어먹을 수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판다의 '엄지'는 첫째 발가락이 아니라 별나게 툭 불거진 발목뼈이다. 그런가 하면 코알라는 앞발에 두 개의 엄지를 갖고 있다.

이처럼 적지 않은 숫자의 동물들이 마주 보는 엄지를 갖고 있지만 우리 인간에 이르러서야 그 기능이 경지에 이른 것이다. 침팬지도 엄지를 갖고 있지만 너무 작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연필을 쥐고 글씨를 쓰는 행동은 아무리 가르쳐도 버거워한다. 젓가락 사용은 애당초 꿈도 꾸지 못한다. 포크를 사용하는 서양인들에 비해 오랜 세월 젓가락을 써온 우리가 훨씬 섬세한 손놀림을 자랑하게 된 것도 결국 우리 엄지의 예민함 덕분일 것이다.

얼마 전 뉴욕에서 세계 13개국 대표들이 참가하여 겨룬 'LG 모바일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미국아르헨티나를 누르고 휴대전화 문자 빨리 보내기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고 한다. 컴퓨터와 서구 음식의 보편화로 인해 언제부터인가 우리 아이들도 점점 엄지를 덜 사용하는 것 같아 걱정이었는데 다시 한번 세계 제일의 '엄지족'임을 확인한 셈이다. 하지만 지나침과 모자람 모두가 문제라 했던가? 과도한 문자 보내기 때문에 엄지 부상이 속출한다니 이를 또 어쩌나. 엄지는 휴대전화를 위해 진화한 게 아닌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