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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60] 뉴욕 시의 지하 터널

바람아님 2013. 9. 15. 12:48

(출처-조선일보 2010.05.28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뉴욕 시의 지하 180m 지점에서 1970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40년째 거대한 땅굴을 파고 있다는 사실은 일반인들에게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는 총 60억 달러의 공사비를 투입하여 2020년에 완공 예정인 제3 상수도 터널 공사로서, 현대의 가장 크고 복잡한 토목공사 중 하나이며 파나마운하에 버금가는 기념비적인 사업이다. 이런 엄청난 토목공사를 벌이게 된 이유는 각각 1917년과 1936년에 완공된 기존의 두 개의 도시 상수도 공급망에서 누수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원격조정 미니잠수정과 심해 잠수부 팀을 동원한 조사 끝에 상수도관에 균열이 생긴 것은 확인했지만, 이 상수도관을 폐쇄하고 수리를 하려면 수많은 뉴욕 시 주민들을 소개시켜야 하므로 아예 시행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누수를 그냥 방치하면 자칫 터널 전체가 파열될 위험이 있는데, 이렇게 되면 9·11 사건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재난이 일어날 수도 있다. 결국 제3의 수도관을 먼저 건설한 다음 기존 시설을 수리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게 된 것이다.

지하철 구간보다 15배나 더 깊은 지하의 단단한 암반 지역에서 행해지는 폭파와 굴착 작업은 대단히 고되고 위험한 일이다. 이 작업은 지하 굴착 전문업자 공동체인 샌드호그(sandhog)들이 맡고 있다. 19세기 이래 뉴욕의 모든 유명한 터널이나 지하철, 교량, 마천루 등을 건설할 때 지하 굴착 작업은 모두 이들이 수행해 왔다. 샌드호그는 대개 아일랜드 인이나 서부 인디언의 후손들로서 대를 이어 이 위험한 일을 하는 경향이 있다. 제3터널 공사의 굴착 사업은 끝없이 땅을 파고 폭파하고 돌무더기를 치우느라고 하루에 10m 이상 진척되지 못한다. 굴착 사업이 끝나고 난 후에도 터널을 콘크리트로 단장하고 각종 기기를 설치한 다음 살균까지 끝내는 데에 최소 6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뉴욕 시만이 아니라 모든 주요 도시들의 설비는 대개 누수가 심각한 상태이다. 아마도 전 세계 도시에 공급되는 식수의 절반 가까이가 가정에 공급되기 전에 소실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갑자기 서울이나 부산 같은 우리나라 도시의 땅 아래 사정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