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09.12.29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그동안 나는 저술과 강의를 통해 줄기차게 우리 인간도 엄연한 동물이며 진화의 산물이라고 주장해왔다. 자연계에서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촌인 침팬지와는 유전자의 거의 99%를 공유한다. 그래서 〈총, 균, 쇠〉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진화생물학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우리 인간을 아예 침팬지와 보노보에 이어 '제3의 침팬지'라고 부른다. 이 제3의 침팬지가 다른 침팬지들로부터 분화된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겨우 600만여년 전이다. 이는 지구의 나이 46억년을 하루로 환산할 때 불과 몇 초밖에 되지 않는 덧없는 시간이다.
우리말로 번역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영원한 베스트셀러의 반열로 뛰어오른 빌 브라이슨의 과학교양서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는 지구의 역사에서 인간이 얼마나 최근에 등장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두 팔을 완전히 펴고, 그것이 지구의 역사 전체를 나타낸다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역사는 손톱줄로 손톱을 다듬을 때 떨어져나오는 중간 크기의 손톱 가루 한 알 속에 들어가버린다."
그러나 이제는 말하련다. 인간은 더 이상 침팬지가 아니라고. 겨우 1% 남짓의 유전자 차이가 만들어낸 생물학적 차이는 실로 엄청나다. 그 짧은 기간에 우리는 직립하여 아프리카에서 지구 전역으로 이주하며 침팬지는 상상도 하지 못할 눈부신 기계문명을 일으켰다. '생활의 달인'들은 한결같이 창의적으로 사고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려 애쓰는 위대한 인간동물들이다.
2009년 다윈의 해를 보내며 진화가 낳은 가장 탁월한 걸작품이 바로 우리 인간이라는 점에 겸허히 동의한다. 인간은 누가 뭐래도 진화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동물이다. 삶의 굴레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열정을 다하는 달인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인간임이 자랑스럽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자기 분야에서 달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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