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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56] 화산 폭발

바람아님 2013. 9. 11. 11:42

(출처-조선일보 2010.04.30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1452년 남태평양 바누아투 제도의 쿠웨(Kuwae)섬에서 화산폭발이 일어났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지난 만 년 동안 일어난 화산폭발 중 최대의 것으로 추정한다. 이때 일어난 쓰나미는 누벨칼레도니로부터 호주까지 오세아니아의 광대한 지역을 초토화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에는 문자가 없기 때문에 이 사건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바누아투 제도의 전승 신화 속에 이 사건을 말해주는 것으로 보이는 이야기가 있다. 신화에 따르면, 태초에 대지의 뱃속에서 큰 소리를 내며 돌들이 튀어나와 서로 싸우면서 바다로 난 길을 따라 달려갔다. 이 혼란 속에서 사람이 태어났는데 이들은 처음에는 돌 위의 이끼처럼 차가웠지만, 곧 여자가 생겨나서 남자들을 따뜻하고 인간적으로 만들었다.

화산폭발 과정에서 나온 약 35㎦의 엄청난 화산재는 지구 전역을 감싸는 먼지 구름을 형성하여 몇 달 동안 햇빛을 막았고, 이것만으로 지구 전체 평균 온도가 1도 정도 떨어졌다. 그 결과 1452~53년 중 지구 곳곳에 기상이변이 일어났다. 이 당시 세계 각 지역의 연대기들은 기상이변으로 인한 숱한 재앙들을 기록하고 있다.

카이로에서는 나일 강 수위가 불규칙해져서 큰 피해가 발생했고, 모스크바에서는 심각한 기근 사태가 벌어졌으며, 스웨덴에서는 흉작으로 교회의 십일조 징수가 거의 불가능해졌다. 콘스탄티노플에서는 봄에 꽃이 피지 않았고 우박이 어찌나 거세게 내리는지 사람이 서 있기 힘들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중국의 기록들이 당시의 사정을 잘 설명해 준다. 1453년 봄에 눈이 계속 내려서 밀 수확을 망쳤으며, 이해 말에는 먼지가 햇빛을 가린 상태에서 눈이 몇 자나 내릴 정도로 일기가 불순하여 수십만명이 얼어 죽었다. 1454년 초에는 양쯔강 남쪽에 40일 동안 눈이 내려서 수많은 사람들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었다. 강과 호수가 얼어붙었을 뿐 아니라, 황해 바닷물도 해안에서 약 20㎞ 나간 곳까지 결빙했다.

최근 아이슬란드 화산폭발로 항공 대란이 일어난 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대규모 자연재해는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세계는 결국 하나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