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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 시각>'中國 詩人 尹東柱' 안 된다

바람아님 2017. 8. 3. 11:07
문화일보 2017.08.02. 12:20


‘그의 저항정신은 그 저항 대상이 식민지 치하라는 외형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인간 내부에 자리 잡고 있는 일체의 부조리하고 부정적인 요소와 인간의 유한성 등이 포함되는, 궁극적 관심의 총화이다.’

윤동주 시인에 대한 글의 일부이다. 필자는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 그는 외설 문학 논란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으나, 탁월한 논문을 쓴 국문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젊은 시절 윤동주 시인을 연구해서 박사 논문을 썼다. 1980년대 중반에 나온 이 논문은 윤동주와 그의 문학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 이전까지 나왔던 윤동주론은 ‘항일’ ‘순국’의 이미지를 강조한 것이 주류였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대부분의 문학인이 굴종했다는 것을 확인한 우리 문학사가들의 당혹감이 빚은 결과였다. 문학사가들은 일제 암흑기에서 윤동주라는 별을 찾아내 항일 순국 시인이라는 계관을 씌웠다. 반면에 일부 문학자는 좌절당한 지식인의 죄의식과 부끄러움이 윤동주 시문학의 본질이라고 상반된 견해를 취했다.


마광수의 논문은 이를 통합하는 내용이었다. 이후 윤동주에 대한 연구는 민족주의 틀을 벗어나 자기 성찰, 인류애 쪽으로 확장됐다. 최근 연구자들은 윤동주가 한국-중국-일본에 걸쳐 살며 당대의 어둠을 초극하는 세계를 지향했던 것을 강조하고 있다. 만 27년 2개월이라는 짧은 생애를 산 시인이 한·중·일 평화의 상징이 될 수 있다는 것.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올해 국내외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념 제전(祭典)들은 그런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이 여기에 돌을 던지고 있다. 지린(吉林)성 명동촌에 있는 윤동주 시인 생가 앞의 표지석 때문이다. ‘中國 朝鮮族 愛國詩人 尹東柱 故居.’ 한국 시인이 아니라 중국 조선족 시인임을 명기했다. 중국 당국은 2012년 생가를 정비해 문화재로 지정하며 이 돌을 세웠다고 한다. 한국 문학단체들이 항의했으나 지금껏 고수하고 있다. 윤동주와 그의 문학을 중국 문화사로 편입하려는 시도로 볼 수밖에 없다.


윤동주가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것은 일제강점기라는 민족사의 아픔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슬픈 역사를 빌미로 그를 중국 애국 시인으로 만들려는 작태는 문화적 폭거다. 윤동주는 국적을 중국으로 바꾼 적이 없다. 한민족의 정체성을 뚜렷이 자각하고 죽는 날까지 한국어로 시를 쓴 그가 어떻게 중국 시인이 될 수 있을까.


물론 민족주의를 넘어선 보편적 인류애의 세계에서 윤동주를 만나는 게 옳다. 그러나 중국처럼 자국의 패권을 위해 왜곡을 일삼을 땐 민족적 분노로 맞서는 수밖에 없다. 문학 단체뿐만 아니라 문화·시민 단체들은 이 지점에서 한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윤동주 연구자인 유성호 한양대 교수의 주장대로 우리 외교 당국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시인인 도종환 장관이 이끄는 문화체육관광부도 아파하고 고민해야 할 일이다. 한낱 돌에 새겨진 글귀라며 놔둬서는 안 된다. 역사·문화 전쟁의 중요한 부분이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의 정체성과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윤동주의 넋이 보고 있다면 얼마나 부끄러워하고 슬퍼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