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8.11 양지호 기자)
英 고고학자 페이건, 해수면 상승으로 2000만명 위험 처해
허리케인·해일 등 지구 '러시안 룰렛' 돼
바다의 습격 |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 최파일 옮김 |
미지북스 | 360쪽 | 1만5000원
네덜란드 이민자가 뉴욕에 처음 이주했을 때, 이들은 남부 맨해튼에 터를 잡았다.
한때 세계 무역을 호령했던 상인들의 피가 수백 년 뒤 미래의 부동산 대박을 예감한 것일까.
답은 '노'. 이곳이 홍수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높은 지대였기 때문이다.
'뜨거운 지구, 역사를 뒤흔들다' 등을 썼던 유명 고고학자 브라이언 페이건(81)은
새 책 '바다의 습격'에서 인류 문명은 바다와의 투쟁사였으며 앞으로도 그 싸움이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1만5000여 년 전부터 현재까지 해수면 높이는 122m 상승했다.
지구의 해안이 지금과 비슷해진 것은 약 6000년 전. 이후로도 해수면 높이는 한 해에 2㎜ 정도로 상승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도 육지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말이다.
사이클론도 허리케인도 쓰나미도 이전부터 있었던 자연의 변덕이었다. 계속 싸워왔다면 뭐가 새롭단 말인가.
거침없이 늘어난 인구다. "1만 년 전 도거랜드(해수면 상승으로 가라앉은 북해 일대) 어부들은 해수면 상승에 적응할 수
있었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 됐다. 이동이라는 선택이 후손(현재 인류)에게는 없다. 이제 지구에는 인간이 너무 많다."
저자는 전 세계적으로 약 2000만명이 해수면 높이에서 5m 이내 범위에 있는 해안지대에 살고 있다고 계산한다.
그리고 그 숫자는 21세기 말에는 4000~5000만으로 늘어날 것이라 전망한다.
땅은 줄고 해안지대에 사는 인구는 늘어난다.
유럽에서 해수면이 1m가량 상승하면 1300만명이 위협받는다.
저자는 "인류가 역사상 최초로 무자비한 왕이나 정복군 또는 종교적 신념 때문이 아니라 변덕스러운 자연의 힘에 의해
발생하는 수백만명 규모의 강제적 이주라는 도전에 직면했다"고 진단한다.
이탈리아 해안 도시 카몰리에서 파도가 성당 외벽을 때리며 부서진다. 해안은 과거에는 먹거리를 구하기 쉽다는 이유로,
이제는 아름다운 경치 덕분에 선호 거주지다. 그러나 태풍 ‘차바’와 허리케인 ‘샌디’ 같은 자연 재난,
계속되는 해수면 상승이 경고를 보낸다. / Getty Images Bank
기후 변화와 난개발이 문제를 악화시켰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지구온난화는 1880년 이후 해수면을 20㎝ 높였다.
상승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두바이는 해수면과 비슷한 높이에 인공 섬을 건설해 수천 채의 주택을 신축했다.
저자는 '망상에 사로잡힌 오만함의 어이없는 발로'라고 성토한다.
쓰나미의 위력을 감소시켜주는 해안 습지대와 맹그로브(홍수림)를 인류는 개발을 이유로 파괴했다. 단기적인 문제와
장기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장기적으로 방글라데시와 태평양 군도 같은 일부 지역은 대규모 이주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기후 변화로 인한 지구 온난화를 우려하는 책이 또 나왔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저자는 현명한 방식으로 '기후 변화'라는 단어가 던지는 소모적 논란을 피한다. 바다의 습격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기후 변화는 핵심 포인트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지금도 허리케인과 태풍 그리고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에
인구 500만이 넘는 '메가시티'가 노출돼 있다. 뉴욕도, 도쿄도 안전하지 않다.
단기적으로는 연안에 있는 세계적 메가시티들. 당장 바닷물이 높이 들어차는 게 문제가 아니라 쓰나미와 허리케인 같은
자연의 변덕에 노출되는 피해자 숫자가 그만큼 늘어난다는 뜻이다. 지진과 달리 예보가 어려운 쓰나미는 더더욱 큰 문제다.
수조원 규모 예산을 들여 자연재해에 대비해야 할지, 아니면 그저 운이 좋기를 바랄지.
저자는 지구가 거대한 '러시안 룰렛'이 됐다고 말한다.
국토에 산지가 대부분인 한국이라고 안심하지 말 것.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는 80층 높이 초고층 아파트와 오피스텔 이
밀집한 곳이다. 작년 10월 5일 10m짜리 파도가 방파제와 방수벽을 넘어 도로와 인근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이닥쳤다.
대지 1만여㎡가 쑥대밭이 됐다. 초고층 빌딩 사이로 파고든 바닷물은 며칠 동안 SNS를 장악했다.
높이가 고작 1.3m에 불과한 방수벽이 도마 위에 올랐다. 10개월이 지났다. 방수벽은 여전히 1.3m다.
남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는 적었다. "모래에 머리를 파묻고 부정하는 것은 방법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무시무시한 이야기만 있을 거라 생각하면 착각.
바다와 투쟁해온 인류의 역사를 담은 책이다 보니 지금보다 기술력이 훨씬 떨어졌던 인류가 어떻게 자연에 적응하며
살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수메르, 도거랜드, 로마 문명을 오가며 펼쳐진다.
그때도 해냈는데 지금도 못할 리 없다는 생각도 함께 건넨다.
그리고 휴가를 아직 떠나지 않은 이들에게. 베네치아에 가려면 빨리 갈 것. 지난 100년 동안 25㎝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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