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성별은 우선 염색체가 결정한다. 맨 먼저 난자의 벽을 뚫고 들어온 정자가 X염색체를 지니고 있으면 여성이 되고 Y염색체를 지니고 있으면 남성이 된다. 임신 초기에 태아의 생식기관은 장차 각각 남성과 여성의 생식기로 발달할 볼프관(Wolffian duct)과 뮐러관(Muellerian duct)을 모두 지니고 있다. 그러다가 임신 8주쯤 되었을 때 특정 호르몬의 영향으로 뮐러관이 퇴화하고 볼프관이 발달하면 남성의 생식구조를 갖게 되고 그 반대면 여성의 생식구조를 갖게 된다.
그동안 교과서에는 인간을 비롯한 포유류와 각종 다양한 동물은 그냥 내버려두면 누구나 암컷으로 태어난다고 적혀 있었다. 수컷이 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과정이 필요하단다. 아무리 X염색체와 Y염색체가 만났더라도 발생 과정의 적절한 시점에 SRY라는 유전자가 발현되어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지 않으면 결국 여성 생식기를 갖고 태어난다는 게 정설이었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프랑스 내분비학자 알프레드 조스트(Alfred Jost)의 관찰에 의거한 이 정설을 뒤엎는 발견이 나왔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최신호에 따르면 남성이 되지 못하면 여성이 되는 게 아니라 여성이 되기 위해서도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 과정이 있다는 것이다. 생쥐 배아의 생식세포에서 COUP-TFII라는 단백질을 합성하는 유전자를 제거했더니 뜻밖에도 볼프관이 퇴화하지 않고 뮐러관과 함께 남아 있더라는 것이다. 이 단백질이 여성 배아에서 볼프관을 없애는 선봉장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일찍이 2003년에 '여성 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라는 책을 출간하며 이 같은 '여성 귀착' 견해는 어쩌면 남성 중심의 관점이 만들어낸 오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간의 발생 과정에 적절한 개입이 일어나지 않는 한 여성이 된다는 이론에 반대되는 이론도 제시되어 있는 만큼 과연 "어느 학설이 옳은 것으로 판명될지 자못 궁금하다"고 썼었는데 이제야 그 궁금증이 풀리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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