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제인 구달 박사님 방한 중에 생명다양성재단이 마련한 '자연: 다양한 자아 실현의 장'이라는 이름의 릴레이 토크에서 배우 박중훈씨는 이 땅에서 왼손잡이로 살아온 애환을 구구절절 털어놓았다. 고교 시절 데생을 배울 때 그리면서 계속 문질러 지워버리는 바람에 미술 선생님께 꾸지람을 들었다는 얘기는 우스우면서 슬프기까지 했다. 세계적으로는 왼손잡이 비율이 10%가량 되지만 우리나라는 5% 정도에 불과하다. 그만큼 편견이 훨씬 심하다는 얘기다. 나는 오른손잡이치고 왼손을 퍽 잘 쓰는 편이다. 당구장에서 남들이 당구봉을 허리 뒤로 돌려 얄궂은 자세로 쳐야 할 때 나는 그저 손만 바꿔 치면 된다. 물론 공이 잘 맞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양손 중 어느 손을 주로 쓰느냐는 우리 뇌의 비대칭에 기인한다.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좌뇌와 우뇌가 기능적으로 다른 동물은 우리 인간뿐이라고 생각했다. 비대칭도 무슨 우월함의 표징이라고 그리 주장했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대부분 영장류는 물론 딱히 손이라고 부르기 애매한 여러 동물도 손발의 좌우 편향성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침팬지 집단에서는 대개 65~70%가 오른손잡이고 고릴라는 75%가 넘는다. 북미 서해안을 따라 분포하는 청개구리는 포식자와 맞닥뜨렸을 때 튀는 방향의 편향성을 보인다.
장관의 군무를 연출하는 철새나 산호초 물고기 무리에서 자꾸 엉뚱한 방향으로 몸을 틀어대는 개체들을 제지하는 장치가 마련돼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 인간 사회만큼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왼손잡이를 탄압하는 동물은 아마 없을 것이다. 가위, 깡통따개, 카메라 셔터 등 대부분의 기기들을 비롯해 거의 모든 여닫이 문들이 죄다 오른손잡이에 맞춰져 있다. 지난 8월 13일은 '세계 왼손잡이의 날'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오른손잡이들을 위한 왼손잡이 체험 행사가 열렸다. 그러나 온 세상이 다 오른손잡이 천국은 아니다. 오랑우탄은 약 66%가 왼손잡이고 캥거루는 거의 95%가 왼발잡이다. 그들 사회도 애써 '오른손잡이의 날'을 기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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