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8.01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남쪽 하늘에 작은 먹구름이 이는가 싶더니 삽시간에 부채꼴로 퍼지며 온 하늘을 뒤덮었다.
세상이 온통 밤처럼 캄캄해지고 메뚜기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그들이 내려앉는
곳은 모두 졸지에 누런 황무지로 돌변한다. 아낙네들은 모두 손을 높이 쳐들고 하늘의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올렸고 남정네들은 밭에 불을 지르고 장대를 휘두르며 메뚜기 떼와 싸웠다."
펄 벅의 '대지'에 나오는 장면이다.
이른바 이동성 메뚜기라 부르는 이들은 우리가 어려서 논에서 잡아 튀겨 먹던 벼메뚜기가 아니라 풀무치다.
세계적으로 수십 종이 있지만 그중 가장 심각한 생태 재앙을 일으키는 것은 아프리카 풀무치들이다.
주로 아프리카 중부와 동북부 지역에 살다가 기후 조건이 맞으면 갑자기 수가 늘며 이웃 중동 지방은 물론 멀리 인도와
중국까지 이동한다. 계절풍을 타고 10억에서 많게는 100억 마리가 하루에 100㎞까지 이동한다.
이들이 쉬어가는 곳마다 풀잎 하나 제대로 남지 않는 까닭은 바로 이 엄청난 숫자 때문이다.
하늘소. /조선일보 DB
이 정도는 아니지만 최근 서울 도봉구와 강북구 일대 주민들은 난데없이 하늘소 떼가 출몰해
혼비백산이란다. 지난해 6월에는 중랑천과 청계천 인근은 물론 압구정동에까지 동양하루살이가
떼로 나타났다. 지역 주민들은 "쓰레받기에 퍼담을 지경"이라고 투덜대지만 그저 성가신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
반면 밤나무와 참나무 등에 구멍을 뚫고 알을 낳는 하늘소의 '대발생'이 도봉산과 북한산의
산림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성경이 얼마나 정확한 역사적 기록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출애굽기 7~12장에도
개구리, 이, 파리, 풀무치의 대발생이 기록되어 있다.
이런 현상이 분명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기후변화와 맞물려 그 규모와 빈도가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닫는 것 같다. 결국 이 또한 우리 스스로 부추기는 일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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