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열대야로 밤잠을 설치는 분들에게 치명적인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워싱턴대 의대 연구진은 35~65세의 건강한 성인 17명을 대상으로 수면과 알츠하이머병의 관계를 연구해 세계적인 신경학 저널 '브레인(Brain)' 최신호에 발표했다. 지원자들은 각자 집에서 5~14일 동안 수면 모니터링을 받은 다음 이틀에 걸쳐 실험실에서 헤드폰을 착용한 채 수면 실험에 응했다. 실험 첫날 지원자들은 깊은 잠에 들만 하면 헤드폰을 통해 '삐' 소리를 들어야 했다. 잠에서 완전히 깨진 않지만 '느린 파형의 깊은 잠(slow wave sleep)'은 즐기지 못했다. 이들의 척수액을 분석해보니 헤드폰은 착용했지만 소리 방해 없이 숙면을 즐기고 일어난 아침에 비해 베타아밀로이드(β-amyloid) 단백질 수치가 훨씬 높았다.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은 뇌에 축적되면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신경세포 파괴 물질이다. 이번 연구가 특별히 주목받는 이유는 단 하루만 밤잠을 설쳐도 이 단백질이 뇌 세포 주변에 플라크(plaque)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밤새워 공부하는 수험생들, 야근을 밥 먹듯 하는 회사원들, 그리고 툭하면 오락으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모두 귀담아들어야 한다.
수면 연구 전문가들은 종종 현대인을 '밤을 잊은 그대'로 만든 장본인으로 전구를 발명해 보급한 에디슨을 지목한다. 하지만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기 전까지 우리 인류가 늘 숙면을 즐겼는지는 의문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600만년 전 훗날 침팬지로 진화한 계열과 헤어져 숲을 빠져나온 우리 조상이 온갖 맹수가 득실대는 초원에서 매일 밤 숙면을 취할 수 있었을까? 약 20만년 전에 등장한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에게도 숙면은 오랫동안 그림의 떡이었을 것이다. 베타아밀로이드의 축적은 아주 오래전부터 진행되었을 것이다. 다만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으로 발전하기 전에 포식동물에게 잡아먹히거나 외상이나 전염성 질환에 의해 사망했을 확률이 월등히 높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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